책을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써질까?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기는 하지만,
다독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한 문장 두 문장 읽다가
자꾸 다른 생각에 빠지고
읽은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글을 잘 쓰려면 책부터 많이 읽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작아졌다.
‘책도 제대로 못 읽는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독서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꼈다.
어떤 글쓰기 책에는
‘하루 1시간 독서, 매달 10권 이상’ 같은 기준이 쓰여 있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나는 또 속으로 좌절했다.
“아, 나는 글쓰기에도, 독서에도 안 맞는 사람이구나.”
“책도 꾸준히 못 읽는데
어떻게 좋은 글을 쓰겠어…”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하면서
나는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책을 읽는 방식,
그리고 그 책을 내 삶에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날은 책 한 줄이
내 글 전체를 바꾸기도 했다.
내가 애써 설명하려고 애썼던 감정을
알아주는 문장을 만나면,
나는 그 문장을 따라
나만의 언어를 다시 찾아갔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사람의 문장을 따라 걸어보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방식’을 천천히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글쓰기의 연료이자, 거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표현은 나도 써보고 싶다’
‘이 방식은 내 글과 어울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문장을 베껴 써보기도 하고,
그 느낌을 내 글에 적용해보기도 한다.
그건 ‘모방’이 아니라 ‘연습’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일이다.
반드시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책 속 문장 하나가
내 글 한 문단이 되기도 한다.
나는 독서가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기준을 낮춘다.
다 읽지 않아도 된다.
밑줄을 한 줄이라도 긋고 덮으면 충분하다.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라도 메모해두면 그걸로 됐다.
그 문장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적어보면 더 좋다.
이 정도면 독서는 글쓰기와 연결되는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된다.
어떤 사람은 책을 ‘정답’처럼 읽는다.
어떤 사람은 책을 ‘도구’처럼 읽는다.
나는 이제 책을 ‘질문’처럼 읽는다.
이 책이 내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뭘까?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내가 이 사람 대신 써본다면 어떤 말부터 꺼낼 수 있을까?
그 질문은 결국 내 안에서 글이 시작되게 한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읽은 문장을 한 번쯤 마음속에서 천천히 반추해보는 습관.
그게 글쓰기와 독서를 연결하는 진짜 힘이 된다.
나는 지금도 독서를 잘하지 못한다.
읽는 속도도 느리고,
종종 책을 덮은 뒤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들은 내 글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흉내가 되었고,
어떤 문장은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고,
어떤 문장은 내가 감히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야기까지 꺼내게 했다.
독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부담 너머에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이나 글 중 기억에 남는 문장 한 줄을 떠올려 보세요.
그 문장이 왜 기억에 남았는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짧게 써보세요.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해 ‘내가 이어서 말해본다면?’이라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한 문단을 이어서 써보세요.
나는 왜 독서를 어려워하거나 부담스럽게 느낄까?
독서를 글쓰기에 어떻게 연결해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 이야기’가 떠오른 적이 있는가?
나에게 울림을 준 문장은 어떤 문장이었는가?
오늘 하루, 내 마음을 흔든 문장 하나를 써보자.
책을 읽는다는 건 글쓰기의 속도를 조금 늦춰주는 일이다.
남의 문장 속에서 나의 문장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아직 꺼내지 못한 내 마음을 조금씩 데려오는 일이기도 하다.
읽는 만큼 당신의 글도 자라날 수 있다.
천천히, 당신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