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맛도 내맛도 아닌데, 그게 나야.

계기라는 것.

by 담하dam ha

내가 우주를 좋아하게된 것에는 계기가 없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보니까 우주를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어느 순간 곰곰히 생각해보니, 좋아하고 있었다.

음식의 취향이나 패션의 취향같은 것은 한 눈에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만 다른 것들은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좋아하고 있었다.

힘들 때는 하늘을 계속 봐선가 구름을 좋아하고, 힘들 때 하늘을 또 봐선가 별을 좋아하고, 좋아하다보니 탐구하게 되어서 어느 순간에는 '아! 뭉게구름이 지나가! 중층운이다!'하고, 어느 순간에는 '혜성은 너무 빨라서 흔적만 볼 수 있는데 저 하늘 어딘가에 혜성의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까.

'어느 순간 보니 좋아하고 있었어!'하는 생각이 들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아직까지 없던 경험이지만 어느 순간 보니 좋아하고 있었다는 말이 훨씬 더 감동적일 것 같다.

잔잔히 그 사람의 취향이나 생각이 스며들고 어느 순간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한다니. 상당히 낭만적인 생각인데, 친구 사이도 그랬으면 한다.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이 친구를 내가 많이 신뢰했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얼마나 기쁠까.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고, 모든 것이 개인화 된 사회에서 가능한 지점을 찾기도 어렵지만 그런 낭만을 꿈꾼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것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어설까.

아니, 어쩌면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르니까 가치도 모르는.

마치 어린 아이가 매운 떡볶이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그것은 외로운 것일까, 외롭지 않은 것일까.

사람들은 무엇에 외로움을 느낄까.

나만 가지지 못해서 외롭다면, 아마 가진적 있기 때문일 텐데.

가져보지 못한자는 모르니까, 몰라서 가져보지 못해서, 불공평하다고 호소할 수도 없을 텐데.

보고 있는 사람, 아는 사람만 외로운 것은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않다면 우리는 모두 외롭지 않다.

외롭다는 것은 외롭지 않은 것을 안다는 것이고, 외롭지 않은 것을 안다는 것은 외로움을 느낄만큼 따뜻한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는 것이니, 우리는 모두 완전한 외로움을 가질 수 없다.

누군가 외롭지 않느냐고 한다면.

'너는 참 따뜻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답할 수 있다.

누군가가 외로워 보인다면, 나는 따뜻한 경험을 한 적이 있고, 누군가가 따뜻함을 나눌 만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외롭게 느낀다면, 외롭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따뜻함을 이해하지 못해서 외롭겠다 말 하는 것이다.

모두가 외롭지 않고, 모두가 외로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면, 기억이 안 나는 나의 태초의 기억까지 몽땅 그러모아, 그 속에서 따뜻한 온기 0.0000000001조각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온기를 겪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고, 그래서 외롭다.

그리고 온기는 사람마다 너무나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있어서 찾아도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그럼, 나는 예전부터 외로웠어.

그러면, 그 사람은 알 수 없는 온기를 나눠주면.

이게 온기야? 나는 아직도 외로워.

그러면, 다른 온기를 찾아 주려면.

관계는 무너져 내린다.

같은 온기의 기억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러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것일테다.

분명.


keyword
이전 15화니맛도 내맛도 아닌데, 그게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