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자국.
오늘도 아침에 립스틱을 발랐다.
매일 아침 바르고, 점심을 먹고 바르는 이것은 루틴처럼 일상에 자리하고 있다.
바르지 않으면 아파보여서 시작된 이 립스틱 바르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인데, 옷을 입거나 벗을 때마다 '아차!'하고 만다.
'빨리 벗고 씻고 자겠어!'의 의지를 담아 옷에 콕 찍히고마는 것이다.
자국이 남은 그 옷은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않아 슬퍼질 때도, 손이 아파라 부벼서 지웠지만 옷은 그 흔적을 담아 헐어 마음이 쓰릴 때도, 에라 모르겠다... 훌훌 내던져 버릴 때도 있다.
일도, 기억도,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고, 맡아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달라질 일도 없다. 그리고 이전에 맺었던 관계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부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같고, 마치 도장과 같다.
지워지지 않고, 지우려할 수록 번지는 것.
일도, 기억도, 관계도 모두 그렇다.
그렇다면 지우고싶은 일이나 기억이나 관계가 있는가 하면, 떠올리고싶지 않은 나쁜 것들이 있지만 굳이 애써서 지우려고 할 당당하지 못한 일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억하고싶지 않고 겪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도 일도 관계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 같은데.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입술자국 같고, 도장 같기도한 그것들을 어떻게 타는 쓰레기 봉투 안에 넣어 버릴 수 있을까.
옷이라면 마음은 쓰리겠지만 타는 쓰레기 봉투 안에 넣어서 태워 버리면 될텐데.
기억이나 일이나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잊지 못할 만큼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것도 아닌데 옷을 버릴 때 쓰린 것처럼 가슴을 쓰리게하는 주제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따라와 쓰리게 한다.
이력에 그대로 남아, 영영히 나를 따라오고, 이부자리에 눕는 순간 번쩍하고 떠오르고, 내가 아무리 깔끔히 끝내고 상대방은 깔끔하지 않을 계획이라 끈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니까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해.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입술 자국난 옷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만 만날 수도 없고, 좋은 기억과 추억만 가질 수도 없으며, 좋은 일만 만날 수도 없다.
모두가 그렇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입술 자국들을, 그 도장들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 저녁의 저 수많은 별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흔적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들은 자신의 흔적들, 그러니까 반짝이는 빛의 흔적이나 움직였던 궤도의 흔적을 남기는데 흔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 흔적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희망을 보기도 하고, 자신을 하늘이 축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 입술자국도 내 도장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관계도, 기억도, 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하늘이 자신에게 지금의 것들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가 되고.
그렇게 생각하니 참 별것 아니다.
그저 입술 자국이다.
오늘도 입술 자국을 남겼다.
입술 자국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 것이라고 특별할 것 있을까.
특별하다면 그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희망일 것이다.
어쩌면 모두 희망을 찍어가는 삶을 매일 살고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