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남짓한 부스에서 친절 가면을 썼다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주차 정산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명절 연휴 동안에만 반짝 일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그 해 명절 연휴가 유난히 긴 덕이었다. 주차 정산원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차량이 다가오면 방긋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차량 번호가 찍히며 주차요금이 자동 정산된다. 고객이 영수증을 주면 금액을 확인한다. 초과한 요금이 있을 때에는 요금을 받고, 바리케이드 열림 버튼을 누른다. 안녕히 가시라고 웃으며 인사한다.
주차료를 수납하는 것이 내 일이었지만 실제로 수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트에서 5만 원 이상 구매하면 5시간, 건물 내 상점에서 구매하면 1만 원당 1시간 무료 주차였기 때문이었다. 주차 시간이 긴 고객은 주로 아이가 있는 가정이었다. 키즈카페에서 놀다가 장을 보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산하는 일은 참 쉬웠다. 하지만 그 일을 단기간만 했다는 것에 몹시 감사했다. 하루에 휴게시간 포함 8시간씩 고작 5일 일한 것이었는데도 너무 지쳤다. 한동안 그곳으로는 장 보러 가기도 싫은 정도였다. 주차 정산 부스에 가만히 앉아서 인사하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그 일이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 이미 눈치챘겠지만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 짧은 기간에, 친절 등급 최상위 고객님(이럴 때 님을 붙여야지)과 싸가지 등급 최상위 고객놈(이럴 때는 놈이 맞다)을 다 만났기 때문이었다. 인성 같은 것이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서 나오진 않음을 그 작은 부스 안에서 느꼈다. 인품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을 수 있다는 것에 매일 놀랐다.
어떤 분은 두 손 공손히(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영수증을 건네주시고, 어떤 분은 끼고 있던 마스크마저 벗어가며 내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해주셨다. 어떤 놈은 오만 원권 한 묶음을 내 눈 앞에 펄럭이며, “내가 이렇게 현금만 들고 다니면서 돈 쓰는 사람이야. 저기서 쓴 돈이 몇백인데 이깟 주차요금 가지고?”라며 몇천 원 내기 싫어서 악을 썼다. 반말은 기본, 내가 있는 부스가 쓰레기통인 듯 쓰레기를 투척하는 일도 있었다.
님에게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미소가 자연히 나왔지만 놈에게는 미소 띤 가면을 썼다. 육두문자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평 남짓한 부스가 내게 그런 가면을 줬다. 아니지, 부스 탓이 아니지. 그런 놈이 내게 가면을 쓰게 만들었다. 친절한 이에게는 얼마든지 친절하게 서비스할 수 있는 나인데.
‘감정 노동’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억누르는 일을 수반하는 노동을 말한다. 따라서 감정 노동자들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가짜 감정을 드러내는 감정 연기를 해야 한다. 웃고 있는 가면으로 얼굴을 덮어야 한다. 얼굴에 땀이 차고, 숨이 막힐 지경이어도 계속 그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으므로,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158쪽)*
나도 누군가에게 놈이었을까. 억지로 친절 가면을 쓰게 했을까. 님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나 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친절이 빚이라면 나 역시도 친절을 돌려주며 빚을 갚아야겠다.
*출처_ 임재영 저,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걸요』, 아르테(arte),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