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Aug 29. 2019

걷기와 글쓰기

나는 글 쓰려고 걷는다

브런치를 개설하고 처음 올린 글은 ‘만 보 걷기’에 관한 글이었다. 그 무렵, 하루에 만 보 걷기에 도전했다. 지인이 알려준, 걸음수로 포인트가 모이는 어플이나 통신료를 할인해주는 어플을 설치한 탓도 있었다. 출퇴근 거리가 멀다 보니 조금만 신경 써서 걸으면 8,000보는 거뜬히 나왔다. 한두 정거장 미리 내리거나 억지로 다른 길로 돌아 가면 10,000보를 채울 수 있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나는 움직이는 걸 싫어해 ‘손 하나 까딱 안 하려 든다’는 꾸지람을 종종 듣는다. 오빠가 외출했다 돌아올 때까지, 소파에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소파곰팡이’냐고 했을 지경. 그런 내가 이제 출퇴근조차 하질 않으니, 퇴사 뒤 내 걸음수는 처참했다. 퇴사 전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외출하는 일이 없을 때는 100보도 채 되질 않았다. 핸드폰은 방에 두고 움직였기 때문이겠지만 손에 쥐고 돌아다녔다 한들 1,000보가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집 근처 공원으로 걷기 운동을 나섰다. 집에 있으니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잠만 잤다. 너무 많이 자서 허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이렇게 방바닥 긁으려고 퇴사한 건 아니었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 글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데 한몫했다.


걷기와 글이라? 뜬금없는 소리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퇴사 후 지금까지 글이 잘 써지질 않아 무척 애먹었다. 글이라는 게 보통 새침한 녀석이 아닌지라 잘 써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긴 했는데 몇 자 적어가다 막히기 일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일과는 이랬다. 출근길 버스에서, 오늘 써야 할 주제를 생각했다. 지하철 환승하러 가면서도 생각했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그게 아니더라도 책을 읽으며 머리를 식혔다. 퇴근길에는 비좁은 틈으로 겨우 탑승하는 경우가 많아 책은커녕 내 몸 하나 가누기 힘들었다.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그때 때린 멍은 사실 무엇을 쓸지 생각하는 시간이었을 터.


그런데 지금의 나는, 늦잠을 자고 낮잠도 자고. TV를 보다가 책도 몇 장 넘겼다가. 노트북 앞에 앉아 웹 서핑도 좀 하고... 그런 뒤에야 브런치를 켰다. 오늘 써야 할 주제를 생각했다... 아! 이거구나. 이 차이였구나.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같이 매일 글쓰기 미션을 도전 중인 회원들에게, ‘글쓰기는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최근 며칠간 나는 생각하지 않고 글부터 썼다. 오늘도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취해서. 그러니 글이 잘 써지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나는 내 걸음을 챙겨보기로 했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면 이천 보 정도 걷는다. 다섯 바퀴 돌고 집에 오면 만 보를 넘긴다. 꼭 만 보를 채우겠다는 목표로 걷는 것은 아니다. ‘걷기 명상’이 끝나면 만 보를 채우지 않아도 집으로 돌아온다. 물 냄새 풀 냄새 맡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기분도 좋아졌다. 멍 때리며 걷다 보면 오늘은 이런 내용을 써야겠다 하고 번뜩 떠오르기도 했다. 이것저것 갈피 없이 떠오르는 것들이,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리되기도 했다.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 걸을수록 시력이 좋아진다, 걸을수록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그동안 밝혀진 걷기 효능이 참 많지만 나는 글 쓰려고 걷는다. 걸으며 생각하려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글을 쓰려고.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받은 친절이 빚이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