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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Sep 01. 2019

나는 대체 누구인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것 같다

퇴사한 지 열흘이 넘었는데 아직도 브런치 프로필엔 ‘회사원’이었다. 퇴사하기 전에는 퇴사하는 날에 바로 바꾸려고 했었다. 퇴사 당일에 프로필을 수정하려고 시도도 했었다. 수정하기 버튼을 클릭했다가 멈췄다. 회사원이 아닌 나는 어떤 말로 나를 소개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수정하지 못하고 꺼버렸다. 우선 휴가부터 즐기고 나중에 바꿔야지. 내일 바꿔야지. 일을 시작하면 바꿔야지. 그렇게 미루다가 열흘이 지난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체 누구인가?


자아정체성 확립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가 청소년기라고 배웠다.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는 나는 여전히 청소년기인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 물론 아니지만... 이래서 오춘기, 육춘기 하는 말이 생기나 보다. 나 같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거지 뭐.


실제 내 사춘기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반항도 하고 그러던데. 나는 고작, 가끔 엄마 아빠한테 대드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사춘기에도 총량이 있어서 그걸 한 번에 다 소모하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가늘고 길게 소모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오, 그럴싸한 말이다. (갑자기 아무 말 대잔치?) 아무래도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것 같다.


가끔 자기 소개할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진땀이 난다. 내가 첫 타자일 때는 더더욱. 어디까지 나를 소개해야 하는지도 감이 안 온다. 모임 성격에 따라 몇 가지 꺼내놓는 선에 그친다. 직업, 나이, 사는 곳, 관심사 정도? 그런데 그런 것들은 내 소개가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 소개쯤이 아닐까. 진짜 ‘나’를 말하는 것들은 아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 


나를 정의하는 일은 참 어렵다. 이게 내가 맞나? 내가 원하는 나 아닌가? 그렇다고 믿고 싶은 나, 착각하고 있는 나 아닌가?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진짜 나를 혼동할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말문이 막힌다. 심지어 글로 쓸 때는 더하다. 말로 할 때와 글로 쓸 때의 무게감 차이도 있어서. 어딘가에 나는 이렇다 하고 적는 일은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다.


앞으로 나를 정의한다면, 내가 매일 하는 무언가로 정의하고 싶다. 매일 책 읽는 사람. 매일 글 쓰는 사람. 최근 한 가지를 추가했는데, 매일 감사하는 사람이다. 아직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다는 단계이다. 서두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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