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밥 대신 집밥을 먹어야지, 엄마표 집밥
엄마는 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셨다. 엄마 말로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늘 적자였다.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하는 건지, 돈을 까먹으려고 장사를 하는 건지. 그래도 그 덕에 오빠도 나도 이만큼 자랐다. 식당이 적자가 아니라 자식농사가 적자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특히 국물 맛이 끝내준다. 우리 엄마라 하는 소리가 아니라 손님들 평이 그렇다. 누군가는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국수 장사해도 되겠다고 엄지를 척 올리고 가셨다. 엄마는 조미료를 사용하는 대신 신선한 식재료를 팍팍 넣고, 품을 더 들이는 쪽을 택했다. 밤새 고아낸 국물은 다른 양념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만했다.
하지만 모두의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식당에서 홀 서빙을 도와드릴 때였다.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나를 불렀다.
“아가씨, 이거 간이 하나도 안 되어 있어. 이런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아저씨 목소리는 컸다. 쩌렁쩌렁. 상냥한 직원이 아닌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 대화가 주방까지 들렸는지, 엄마가 육수 주전자를 들고 후다닥 달려오셨다.
“아이쿠,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간을 깜빡했네요.”
전골냄비에 육수를 한 바퀴 휘익 부어드렸다. 아저씨가 다시 국물 맛을 보시더니, 그래 이 맛이지 하셨다. 엄마가 이런 실수를 할 때가 있나? 손님도 많지 않았는데 이상했다. 그 손님은 식당을 나가면서까지, 다음에는 간 맞추는 거 깜빡하지 말라고 훈수를 두셨다. 계산하고 배웅 인사를 드리면서도 기분이 영 찜찜했다. 손님이 저 멀리 떠나고 나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진짜 간 맞추는 걸 까먹었어?” 그러자 엄마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답하셨다.
“아니, 미원이야. 미원 맛에 길들여져서 그래.”
벌써 10년도 넘은 일인데 갑자기 떠오른 건, 책에서 미원과 관련한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화학조미료가 좋다 나쁘다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읽은 글은 전주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허혁 님의 에세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에 나오는 내용으로, 글 제목은 「남편이라는 것들」이다*.
하루는 밥맛이 없다고 죽을상인 거야
그래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머리라도 잘라서 해주마 그랬더니
어릴 때 엄마가 끓여주던 시래깃국이 먹고 싶대
뭐 어려운 일이라고
삼 년 묵은 된장 풀어서 내놨지
근데 어릴 적 그 맛이 아니래
온갖 것 다 넣고 육수 내서 해줬어
그래도 아니래
들깻가루 넣고 해줘도 아니래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사람 환장하겠는 거야
정성이 없어서 그런대
미치고 팔짝 뛰겠더만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대
씨발놈, 또 쭝병 났네
하도 미워서 화학조미료나 먹고 빨리 뒈져버리라고 미원 쳐넣고 끓여줬어
미원 넣고 음식 하면 죽는 줄 알거든
근데 미친놈이 바로 이 맛이라는 거야
글쎄 눈물까지 글썽이더라고
에라이, 호랭이 물어갈 놈
(하략)
요즘에는 나도 미원 맛에 길들여진 것인지 엄마표 집밥이 싱거울 때가 많다. 집밥 대신 바깥 밥을 많이 먹고 다닌 탓인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밖에서 사 먹는 밥은 달거나 짜거나, 자극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걸 잘 모르고 먹는다. 이러다 나도 미원 한 번 휘익 둘러야, ‘그래, 이 맛이야!’ 하게 되는 거 아닐까. 더 길들여지기 전에 엄마표 집밥 많이 먹어야겠다.
*허혁 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수오서재, 2018
사족이겠지만 허혁 님이 남자다. 아내의 시선으로 찰지게 잘 쓰셨다. 읽다가 빵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