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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Oct 05. 2019

이 죽일 놈의 글

왜 글 쓰는 건 하나도 안 느는 건데요

글을 쓰면서 가장 고민인 부분은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주제로 시작할 때도 있고, 쓰고 싶은 한 가지 소재를 정해서 시작할 때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무엇을 쓸 것인지 정하는 일은 어렵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듯, 버튼을 누르면 띵 하고 나오면 좋겠다. (앗, 그럼 돈을 넣어야 하나?)


글을 쓰다 보면 몇 글자 적다가 더는 쓸 내용이 없어서 다 엎어버릴 때도 있다. 몇 자 적은 게 아까워도 더는 쓸 수가 없으니 별 수 없다. 그런 글은 보통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을 적으려고 한 경우다. 아니면 오래 생각하지 않은 내용이거나.


반면에, 한 줄로 시작한 내용이 “벌써 이만큼이나 적었어?” 할 때까지 술술 적힐 때도 있다. 눈치 챘겠지만 내가 잘 아는 내용을 적을 때 그렇다. 내가 직접 체험할 일이거나 내가 평소에도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내용이다. 생각한 시간이 길거나 고민한 깊이가 깊을수록 글로 더 잘 써진다.


글이 곧 나다. 꾸며내려고 하면 잘 안 써진다. 멋진 문체로 포장하려 해도 결국 내 말투가 나온다. 아는 체해보려고 해도 결국 바닥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속상한 일인데, 바꿔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글에서도 잘난 체를 하고 싶나 보구나. 그걸 인정하게 만들고야 마는구나. 이 죽일 놈의 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자 나에게 가장 많이 상처 주는 일이 아닐까.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바로 나다. 쓰면서 바로 읽고 있으니까. 독자로서 눈높이가 높아지는 만큼, 나에게 실망하는 일이 자꾸 는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다독과 다작이라고 하던데, 가끔은 따지고 싶다.


“책 읽은 만큼 글 쓰는 것도 는다고 했잖아요. 왜 글 쓰는 건 하나도 안 느는 건데요.” 


나 자신에게 팩폭(팩트 폭행, 사실을 말하지만 듣는 이는 두들겨 맞는 듯한 말)하자면 읽는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읽고 쓴 양이 많이 부족해서다. 나에게 위로도 해볼까. 조금씩 늘고 있지만 내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사심을 가득 담아 후자면 좋겠다.






*비, 신민아 주연의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2005 방영)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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