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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Oct 06. 2019

내 일의 방해꾼은 나다

낮에 뒹굴뒹굴한 죗값을 저녁에 받는다

회사를 그만둔 지 한 달이 넘었다. 요즘 나는 집에서 일한다. 프리랜서라고 말하기엔 수입이 변변찮고, 백수에 가깝다. 이번 일감도 지인 찬스로 겨우 얻었다.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출판계 어드매에 발을 담그고 있던 지라 외주 일도 다 출판 일이다. 주로 교정 교열 작업을 하는데 이번 일은 출간 후 생긴 부속 작업을 하고 있다. 내 글도 제대로 못 쓰는 주제에 남의 글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머리를 쥐어뜯기 바쁘다.


남들은 카페에서도 일한다지만 나는 내 방이 작업실이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기엔 내 노트북은 너무 작다. 휴대하기 편하게 가장 작은 13인치를 구입한 건데 이럴 때면 아쉽다. 집에서 일할 때는 24인치 모니터를 연결해서 화면 두 개를 켜서 작업한다. 한쪽 화면에는 원고를 켜 두고 다른 쪽 화면에는 검색한다든가 하는, 여러 창을 오가는 일을 한다.


회사에서 내 일의 방해꾼은 회의였다. 회의는 왜 꼭 집중 잘 되는 때만 쏙쏙 골라서 열리는가. 시도 때도 없이 회의가 들이닥쳐서 내 업무는 손도 못 댄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야근이었지.


지금 내 일의 방해꾼은 나다. 침대에 눕고 싶은 나, 거실에 가 TV를 켜고 싶은 나, 괜히 먹을 것을 찾아 부엌을 헤매는 나. 갑자기 허리가 아픈 것 같고, 어깨가 뭉친 것 같고. 나도 눈치채는 꾀병이다. 일하기 싫어 병이다.


회사원일 때는 일이 늦어져 다음 달에 마감해도 이번 달 월급이 나온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일이 늦어지면 안 된다. 얼른 마감해서 외주비를 받아야 근근이 먹고살 수 있고, 그래야 또 일 받을 기회가 생기니까. 그러니 낮에 뒹굴뒹굴한 죗값을 저녁에 받는다. 오늘이 그렇다. 야근 당첨!


이제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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