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Oct 09. 2019

나를 복제할 수 있다면

영화 <제미니 맨>

윌 스미스가 1인 2역으로 열연한 영화 <제미니 맨>을 봤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은퇴한 최정예 요원 헨리(윌 스미스 분), 그를 죽이러 신참 요원 주니어(젊은 윌 스미스)가 등장한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모습, 숨겨둔 아들이 있을 리 없고... DNA 검사를 해보니 헨리와 100% 일치한다. 헨리를 복제한 요원인 것이다. 컴퓨터 기술 덕에 50대 윌 스미스와 20대 윌 스미스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를 복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 입에 풀칠하기 벅차니 복제까지 하면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복제가 가능하다면, 이왕이면 여럿 복제하고 싶다. 각자 다른 영역에 도전해보게 만들고 싶어서다. 예를 들면, 한 명은 글쓰기에, 한 명은 미술에, 또 다른 한 명은 운동에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영역에 도전하면 그중에 하나는 나에게 맞는 것을 찾지 않을까?


그 뛰어난 기술로 기껏 하고 싶은 게 나의 적성 찾기라니. 그렇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좁디좁은 내 정신머리로는 엄두가 잘 안 난다.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들고 싶다가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하고 포기하기 바빴다. 


처음부터 나는 이 길로 가고 싶어. 꿈이 확고한 사람이 부럽다. 난 한두 달 해보는 걸로 이게 내 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겠더라. 처음에는 무슨 일이든 재미있고 열정적이니까. 깨치고 부딪히고 좌절도 하고 슬럼프도 겪고 몇 년을 해봐야 적성인지 아닌지 알지 싶다. 그나마도 그때라도 안다면 다행이다. 그 세월이 지나도록 모를 확률이 크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한 분야에 몰두했다가 그 길이 아니라면?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그래서 도전하기 두렵고 실패하기 무섭다.


적성 찾기가 아니라면 이런 일은 어떨까. 한 명은 출근하게 하고 한 명은 집에서 노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제미니 맨>에서는 헨리가 주니어에게, ‘네가 내 복제인간이다’를 설명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넌 벌 알레르기가 있고, 의심이 많고, 어떤 때 가장 행복하며...’ 대사가 길어서 잘 생각나질 않지만 대사 중 많은 부분이 성격이나 가치관에 관한 내용을 포함했다. 영화로 그려내기 위해 그런 것이지만 DNA가 100% 같으면 성격도 100% 같을까?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이 유전이냐 환경이냐에 대한 논의는 차일로 미루고, 영화 속 설정만 떠올려보자. 영화처럼 성격마저 같다면 곤란하다. 나를 복제한 사람이라면 그 역시도 나처럼 집에서 놀고 싶어 할 테니까 말이다. 서로 소파를 차지하겠다고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일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말 할 거면 돈 내고 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