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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Oct 10. 2019

아빠는 딸 복도 없지

어쩌다 이렇게 잔소리 많은 딸이 되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니 안 좋은 점이 생겼다. 하루 걸러 하루, 아빠와 싸운다. 싸운다고 하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잔소리하는 것이니까. 하루를 거르는 이유는, 아빠가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교대 근무를 하시기 때문이다. 일터로 나와 있는 시간에야 겨우 딸내미 잔소리를 피하시는 셈이다.


“너는 아빠한테 잘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게 잔소리를 하며 못살게 구니?”


어제저녁, 엄마가 내게 물었다. 잘해주긴 뭘 잘해줘. 내가 툴툴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나만큼 아빠와 잘 노는 딸이 있을까 싶은데. 나만큼 아빠한테 쫑알거리는 딸도 없을 테지.


어제도 아빠와 극장에 다녀왔다. 극장이 가까이 있어 자주 가는데, 퇴사 이후에는 횟수가 더 늘었다. 가기 전에는 소파에 반쯤 누워 계신 아빠를 보고 한 소리했다. 소파에 앉은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니고, 한 140도나 160도쯤 기울어진 채로 목만 들어 TV를 보고 계셨다. 그 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다. 그렇게 누워 있다간 허리며 목이며 다 망가진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꼭 그 자세로 TV를 보셨다. 그러니 내가 또 잔소리를... 


영화 보러 다녀오는 길에는 운동 때문에 한바탕 했다. 집 앞이 공원인데 왜 운동을 안 하시냐. 걷기 운동이라도 좀 챙겨 하시라. 너도 요즘 방에만 있더라. 나는 마감이 코앞이라 그랬던 거다. 그런 대화가 오갔다. 


함께 여행을 가도, 평소 뚜벅이로 다니시는 엄마는 걷는 것도 무리가 없다. 반면에, 늘 차와 함께하는 아빠는 조금만 걸어도 다리 아파하신다. 걷는 속도도 느리신데 얼마 걷지 않아 다리 아프니 쉬자고 하신다. 환갑을 지나면서 갑자기 확 늙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야, 나이 핑계 대지 말라고 또 잔소리를 한다.


사실 나도 안다. 잔소리는 잘못된 표현 방법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속으로는 아빠가 더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더 좋은 걸 드셨으면 좋겠고, 그래서 앞으로 나와 더 많은 걸 함께해주셨으면 하는데. 겉으로는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잔소리한다.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유독 아빠에게만 그러는 건, 아빠와 내가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두 분이 무척 닮으셔서 우리 가족 넷을 한 화면에 놓고 봐야 티가 나는 수준이지만 아빠를 더 닮긴 했다. 심지어 성격도 아빠 판박이다. 요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도, 싫어하는 내 모습도 아빠에게서 본다. 싫어하는 모습이 나올 때 내 잔소리가 폭발한다. 와다다다. 


결국 내가 나에게 쏘아버리는 화살을 애꿎은 아빠가 맞고 계신 셈이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으시지만) 딸바보인 아빠는, 오늘도 딸내미 잔소리에 ‘아유, 알았어. 이놈아.’ 하고 마신다.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었으면 좋으련만. 아빠는 딸 복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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