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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n 25. 2019

내 주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시작

시작은 언제나 어려웠다. 처음부터 완성품이길 원했다. 물론 내 욕심이었다. 하고 싶은 일에는 이상향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고, 어느 정도 성공도 한 모습을 보고 시작하니까. 나도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길 바랐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블로그를 개설할 때도 그랬다. 그때 날짜가 x월 1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한창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다가 멈칫, “이왕이면 1일부터 할까?” 그렇게 신청을 미뤘다. 그래 놓고 막상 1일이 되었을 때는 까먹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면 또 못난 나를 한 대 쥐어박았다. “어차피 하루 늦은 거 다음 달에 할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생겼다. 연말에 한가한 체육관이 연초에 붐비는 것도 나 같은 사람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올린 포스팅은 없으면서 카테고리는 어떤 것들로 나눌지 고민하기도 했다. 덕분에 카테고리마다 글 수는 모두 빵 개. 빵빵빵. 팡파르가 울렸다.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시작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속으로는 나도 그렇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걸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내 주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내 시작이 미약함을 나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내가 바란 일은, 전시된 케이크를 보고 제빵에 나서면서 반죽 한 번 안 하고 케이크가 나오길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뜀틀 1단계를 넘는 수준인데 갑자기 10단계쯤 쌓아놓고는, 내가 기어이 저걸 넘어보겠다며 우기는 꼴이었다. 시작은 언제나 어려웠다. 내 욕심 때문에... 덕분에 수많은 뱀꼬리만 남았다. 용이 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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