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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n 26. 2019

나는 어리석은 원숭이였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시작

원숭이를 쉽게 잡는 방법이 있다. 원숭이 손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좁은 병이나 항아리를 준비한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병 안에 넣어둔다. 원숭이가 잘 지나다니는 곳에 둔다. 원숭이는 병 안에 든 간식을 먹으려고 손을 넣는다. 하지만 간식 쥔 손은 병 밖으로 뺄 수가 없다. 간식을 놓고 손을 빼면 되는데 포기하지 않고 낑낑 댄다. 그때 가서 원숭이를 잡는다.*


이 이야기를 해준 건 내 첫 직장인 A사에 같은 날 함께 입사했던 언니였다. 말하자면 입사 동기인데 언니는 떠나고 나는 남은 상태였다. 언니가 워낙 이야기를 재밌게 해 줘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났는데, 글에 담으려 이야기 출처를 물어보니 TV에서 본 것이라고 한다. 동물의 왕국이나 동물농장 같은 프로였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첫 직장 퇴사를 고민하던 어느 날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와는 달리, 직장을 그만둘 때에는 무게감이 달랐다. 남들처럼 힘들게 취업 준비를 했던 것이 아니었던 터라 여기를 나가면 다른 일을 구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고민하는 나에게 언니가 말해줬다.


“지금은 길이 없는 것 같지? 그런데 또 막상 나와보면 또 다른 길이 있고 그렇다? 그리고 여기, 첫 직장으로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얼마 후, 나는 퇴사했다. 조금만 견디면 다달이 나오는 월급을 놓아버리고 병에서 손을 뺀 것이었다. 억지로 빼려는 손이 병 입구에 끼어 한참 괴로웠을 텐데. 알량한 월급에 손이 묶인 나는 어리석은 원숭이였다.


내가 정말 퇴사하고 싶었을 때는 사장님의 인신공격성 발언에 상처를 받았을 때도, 퇴사한 직원들의 일이 모두 나에게 넘어왔을 때도 아니었다. 친한 언니들이 다 떠나고 혼자만 남았을 때. 그때가 이젠 정말 퇴사해야겠다 생각했을 때였다. 상처 받고 힘든 날에 같이 회포를 풀 사람이 없다는 것, 일에 치이고 마감에 치일 때 함께 으쌰으쌰 기운을 북돋울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또다시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요즘.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자꾸 생각난다. 나는 또 병 안에 손을 넣고 있는 걸까. 퇴사를 입밖으로 꺼낼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자꾸 계산기를 두드렸다. 얼마를 벌 수 있나, 얼마를 쓸 수 있나, 얼마를 모을 수 있나 하는 것들. 그러니 답이 나오지 않을 수밖에. 그러니 다시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있다. 그 역시도 당연한 말이다. 그 당연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이 좁은 병 속에, 간식이 들어 있어서.



*참고_ 검색해보니 원숭이 잡는 법으로 꽤 많은 글이 나옵니다. 어느 글에서는 미얀마 원주민의 방법이라고 하고 어느 글에서는 중국 사람들의 방법이라고 나오네요. 원출처는 알 수 없습니다. 글에 적었듯, 저는 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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