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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07. 2019

내 인생에도 비계(飛階)가 필요하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계단

비계.

비계라고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기의 기름덩어리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비계에는 동음이의어가 참 많다.


비계 : 짐승, 특히 돼지의 가죽 안쪽에 두껍게 붙은 허연 기름 조각.

비계(飛階) :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

비계(祕計) : 남모르게 꾸며 낸 꾀.

비계(祕啓) : 임금에게 넌지시 글을 올림.

비계(鄙計) : 근본적인 대책 없이 임시변통으로 세운 계략.


교육 심리 시간에 비고츠키(Vygotsky)의 인지발달이론*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첫 번째 비계(기름 조각)밖에 알지 못했다. 비고츠키는 딛고 올라설 발판만 있다면 학습자는 한 계단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비계는 두 번째 비계(飛階, 임시 가설물)이다.


비고츠키는 학습자와, 학습자보다 조금 더 나은 이(이를 테면 교사)의 상호작용이 학습자가 발달할 수 있게 돕는다고 했다. 비고츠키가 말하는 ‘발달 수준’에는 학습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과 누군가의 도움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 있다. 전자를 ‘실제적 발달 수준’이라고 하고 후자를 ‘잠재적(잠정적) 발달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 수준 사이의 간격을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라고 한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발달 수준을 하나의 건물이라고 그려 보자. 학습자는 지금 1층에 있다. 그런데 계단이 있으면(누군가의 도움이 있으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때 1층이 실제적 발달 수준, 2층이 잠재적 발달 수준인 셈이다. 그 둘 사이의 간격은 근접발달영역이고...


혼자서라면 1층에 머물러 있는 학습자를 2층으로 올라가게 하려면? 계단을 놔주면 된다. 이 계단이 바로 비계(飛階)이다. 그리고 비계를 학습자에 맞게 설정해 주는 것을 ‘비계 설정(Scaffolding)’이라고 한다. 높이가 너무 높은 계단은 그 앞에 선 사람에게 벽일 뿐이다. 그러니 큼지막한 계단 두 칸이면 되는지, 야트막한 계단으로 촘촘하게 놓아주어야 하는지, 학습자에 맞춰 계단을 놓아줘야 한다.


교육 심리 시간에 배운 많은 이론 중에 이 이론이 인상 깊었던 것은 가장 따뜻하게 느껴진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이론에 온도 타령이라니. 뜬금없긴 하다. 이 이론을 공부하며 훗날 내가 만날 학생들에게 디딤돌을 놓아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은 되지 않았지만 가끔 비고츠키의 이론이 떠오를 때가 있다.


혼자서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것 같을 때.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을 때.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을 때. 한 번에 뛰어오르기엔 내 능력이 턱 없이 부족한 것 같을 때... 그럴 땐 누군가 나에게 발 디딜 계단 하나 내려줬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도 비계가 필요하다.




*참고_제 설명은 많이 부족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비고츠키 인지발달이론, 비고츠키 근접발달영역 등의 키워드로 직접 검색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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