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Jul 15. 2019

별자리는 없어도 괜찮았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별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5학년 때였나. 어쩌면 6학년이었을지 모를 어느 날. 오빠랑 거실 천장에 야광별을 붙였다. 오빠가 의자에 올라가고 나는 의자를 붙잡고 있었다. 거실이라곤 하지만 거실 겸 큰방이었다. 어느 날에는 그곳에서 오빠는 침대에, 나는 바닥에 자고. 또 어느 날에는 내가 침대에, 엄마랑 아빠가 바닥에 자고. 우리 네 가족이 대중 없이 그곳에서 잤다. 베개를 가져와 머리 대고 누우면 그 자리가 내 자리였다. 불이 꺼지고 천장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자리 없이 붙어 있었다. 마치 우리 식구처럼.


“별자리라도 맞춰서 붙일 걸 그랬다.” 오빠가 그런 말을 했었는데 별을 다시 붙이진 않았다.


그 별들을 마지막으로, 천장에 별을 붙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야광별을 다시 만난 건 천장이 아니라 바닥에서였다. “ㅇㅇ아, 처음에 나올 때 어디로 나와, 동선 잡아 봐.” 내가 무대 위에서 자리를 잡자, 선배가 내 발아래 야광별을 붙였다.


학과 행사 뒤풀이에서 한 선배에게 찜 당해 원하지 않는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연극 동아리였다. 워낙 소수로 이루어진 동아리라 회원 모두 배우이자 스텝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국어책 읽기보다 못한 대본 리딩을 겨우 끝내고 로봇보다 못한 움직임으로 동선을 짰다. 연기를 하는 모든 순간이 고역이었다. 발연기는 필수, 오글거림은 덤이었다.


1학년 때 올린 공연은 엉망이었다. 이 무대만 끝나면 동아리를 탈퇴할 거라고 동기들과 말했지만 그대로 2학년이 되었다. 내가 제일 먼저 도망갈 줄 알았는데. 너무 못한 공연이 아쉬웠을까. 제대로 한번 못해보면 억울할 것 같았을까. 2학년 때에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친구랑 둘이 남아 더 연습하고, 연습이 끝나면 무대 음향이나 소품을 준비했다. 그렇게 거의 6개월을 연극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연극 당일. 떨렸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잘하고 싶은 만큼 떨렸다. 드디어 공연 시작을 알리며 무대를 밝혀주던 조명이 꺼졌다. 첫 장면은 나를 제외한 등장인물이 그림자로만 등장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등장인물의 사연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조명 담당 선배가 4구에 코드를 꼽는 순간, 팟 하고 불꽃이 튀었다. 조명은 들어오지 않았다. 낡은 4구가 말썽을 부린 것이었다. 배우들을 비춰줘야 할 빛이 없으니 그림자도 없었다. 암전만 계속되고 있었다. 배경음악은 눈치 없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음악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음악이 끝나면 나는 무대에 올라야 했다. 무대에 가장 먼저 발을 딛는 인물이었다. 다시 시작해요? 음악 다시 켜달라고 해요?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할까요? 그런 눈빛을 마구 보냈지만 선배는, “가가가가가.” 손짓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무대로 향했다.


아무 조명 없는 무대. 컴컴한 그곳에 발을 내민 순간, 야광별이 보였다. 반짝하고.

네가 가야 할 길이 여기야. 이 자리까지 와야 해.


언젠가 오빠가 그런 말을 했었다. “별자리라도 맞춰서 붙일 걸 그랬다.” 아니다. 내가 했던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별자리는 없어도 괜찮았다. 무대 위 야광별에도 별자리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대신,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있었으니까.


연극은 어떻게 되었냐고? 글쎄. 나는 여전히 발연기를 했을 테지. 그래도 나는 그날 별을 얻었다.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면 반짝하고 빛나는 별을...

매거진의 이전글 기쁘게 마음먹으니 기뻐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