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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16. 2019

들판 한가운데에서 하늘의 강을 마주했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별

중학교 때 수련회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수련회라 하면, 무엇을 수련하는 시간인지는 모르겠고. 떠나기 전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군대 문화의 잔재나 (더 나아가 보자면)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의 잔재가 아닐까 싶은데. 수련회를 떠난 중학생 나는 꽤나 FM 학생이어서 조교가 구르라면 구르고 뛰라면 뛰었다.


하루 종일 흙먼지 마시고 땀 흘린 그날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도, 잘못된 행사라는 비판 의식이 없던 나를 탓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조교가 잘 생겨서 소녀 마음에 불을 지폈다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별 때문이었다.


수련회 첫날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울 무렵. 갑자기 전원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잠옷을 입은 채로 얼결에 운동장으로 모두 집합했다. 이 독하디 독한 수련회는 잠도 안 재운다냐. 그렇게 툴툴거렸다. 갑자기 분위기 살벌하게 좌로 정렬, 우로 정렬 같은 것을 시켰다. 앞뒤 간격을 촘촘히 세우고는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게 했다.


눈을 감으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지 않은 몇몇 아이들 때문에 가끔 큰소리가 났다. 앞사람을 따라 조심히, 천천히 이동하라고 했다. 눈을 꼭 감은 채 종종걸음으로 앞사람을 따라갔다. 도대체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거야. 수군거리며...


얼마쯤 걸었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앞사람 어깨에서 손을 떼라 했다. 뒤로 돌아. 자리에 앉아. 나는 하라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자,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조교가 그렇게 말했다.


눈을 떴다. 논인지 밭인지 모를 들판 한 귀퉁이 언덕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아.


은하수였다. 들판 한가운데에서 하늘의 강을 마주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많은 별이 머리 위에 있었다. 내게로 쏟아질 것 같아 무서움마저 느껴지는 그런 별들을 만났다. 다들 나처럼 와아 한마디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래서 은하‘수’라고 하는구나. 정말로 하늘에 강이 흐르고 있구나.


고백하자면 그때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때가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날 올려다본 은하수는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후로도 몇 번 은하수를 보았지만 그때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그때만큼 밝게 빛나는 것 같지 않아서일까. 그때처럼 도시의 인공 불빛 없는 곳에 가면, 칠흑 같이 어두운 곳에 가면 그 은하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꼭 한 번은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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