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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17. 2019

내 마음에 ‘별이 빛나는 밤’을 비춰 본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별

퍼즐에 빠진 때가 있었다. 두 번째 직장(이자 현 직장)에 막 입사했을 때다. 다이소에 파는 3천 원짜리 300피스 퍼즐을 시작으로 5천 원짜리 500피스 퍼즐을 맞췄다. 퇴근길에 들러 하나를 사 와 자기 전까지 맞췄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면 다음날 다이소에 들러 또 하나 사고.


그중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을 맞출 때가 생각난다. 내가 화가와 작품명을 아는 몇 안 되는 작품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은 3천 원짜리 300피스 퍼즐로 내게 왔다.


내 기억에 ‘별이 빛나는 밤’은 신비롭고 황홀하고 고요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퍼즐을 맞춰 가며 마주 한 그림은 더 이상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하늘은 바라볼수록 어둡고, 별은 빨려 들어갈 것 같아 무서웠다. 마을은 적막하고 창가의 불빛은 쓸쓸했다.


볼수록 불안하고 우울해졌다. 그림을 그린 고흐의 마음이야 내가 알 수 없지만 그림을 보는 내 마음이 그랬다. 한 조각 한 조각 맞춰 가다 울컥 서러운 마음이 쏟아졌다. 그림 속 별들이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눈물 고인 눈으로 별을 바라보면 그런 모습이 나올 것 같았다.


그전만 해도 내가 방구석에서 퍼즐이나 맞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순이 비하나 퍼즐 무시 발언이 아니다. 집보다는 밖을 택했던 외향적인 나를 말하려는 것이다. 주말이든 주중이든 약속이 많아서 “너를 만나려면 한 달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겠다야.” 하는 농담도 들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약속은커녕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조차 싫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날들이 계속되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상처 준 사람과 만나려는 사람이 같은 사람도 아닌데.


엄마, 이 세상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 참 많다 했잖아요. 참으로 많다고 했잖아요.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면서요. 그게 아니던데요. 애꿎은 엄마를 탓했다. 믿었던 성선설에게 배신당하고, “역시 성악설이야!”를 외쳤다. 그때는 그랬다.


고작 300피스라 퍼즐을 다 맞추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퍼즐을 다 맞추고 멍하니 그림을 보다 다시 흩어 상자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꺼내 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려, ‘별이 빛나는 밤’을 찾아보았다. 모니터 화면에 그려진 밤하늘은 그때 퍼즐로 만난 그림이 맞다. 그러나 그때처럼 나까지 뱅글뱅글 돌아버릴 것 같은 우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같은 그림인데. 다른 마음으로 보니 같은 그림도 다르게 보이는 걸까. 내 마음에 ‘별이 빛나는 밤’을 비춰 본다.



*참고_ 그림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검색한 이미지입니다. 해당 글의 출처에는 ‘The Bridgeman Art Library’가 적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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