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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20. 2019

별 볼 일 없는 나, 그런 나여도 괜찮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별

어린 내가 생각했을 때, 서른둘 즈음에는 결혼할 줄 알았다. 그즈음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내 일에 전문가가 될 줄 알았다. 만으로도 서른둘이 지난 나는 결혼 얘기엔 콧방귀 뀌고, 전문가는커녕 매일이 퇴사 위기인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내가 퇴사한대도 회사에서는 전혀 아쉬워하지 않을 그저 그런 회사원이 되었다.


십 대에는 내일이 막막하고 막연한 그런 마음이 십 대면 끝나는 줄 알았다. 이십 대에도, 이런 불안한 마음은 이십 대에 끝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은 무심히도 계속 흘러 삼십 대가 되었다. 여전히 앞날을 고민하는 삼십 대가 되었다. 사직서를 품고 살지만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되어 던지지 못하는 흔한 사축(社畜)*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삼십 대가 지난다고 해도 나는 그대로일 것임을 안다. 나이를 먹는다고 내 모습이 달라지거나 내 고민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더욱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나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를 읽으면서, 사십 대가 되어도 똑같겠구나 싶었다. 사십 대인 두 책의 저자(이자 글 속 화자)도 내가 했던 고민, 하고 있는 고민, 할 법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별 볼 일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던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수긍한다. 별 볼 일 없는 나를... 이십 대까지만 해도 내 노력이 부족했던 탓일까, 내 환경이 달랐던 탓일까 생각하며 슬펐고, 아팠고, 지쳤던 날이 많았다. 삼십 대가 되니 그런 날이 줄었다.


가끔 커피숍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든 대학생들을 보면 그 젊음이 부럽다. 그 싱그러움이 부럽다. 하지만 그 나이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지친 날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지금의 마음이 체념일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체념한 덕에 여유를 얻었으니까.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치킨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는 내가 욕심 없는 사람일리 없다. 더 잘난 사람이고 더 자랑스러운 인생이고 싶다. 잘난 척 좀 하며 살고 싶다. 그런 욕심은 여전히 있다. 그래도 별 볼 일 없는 나, 그런 나여도 괜찮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걸 어떡해? 그렇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이실직고하자면 방금, ‘웃어넘길 수 있다’고 적었다가 ‘있을 것 같다’고 고쳤다.)





*참고_사축이란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말합니다. 강백수의 『사축일기』(꼼지락, 2015)에 나온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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