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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21. 2019

별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수 있도록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별

몇 년 전, 서른을 앞두고 진로에 고민이 많았다. 진로 고민은 고등학교 때 끝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탓인지 직장을 다니면서도 계속 같은 고민을 했다.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 일일까? 내가 다른 일을 안 해봐서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런 고민을 이어나갔다. 안 해서 못하는 것인지, 못해서 안 하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안 하는 일이자 못하는 일을 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미술’이었다. 학창 시절 나에게 괴로운 시간은 수학도 과학도 아닌, 미술 시간이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일도 너무 어려웠다. 똑같은 걸 보고 그리는 건데 내 그림만 왜 이 모양이지? 그럴 때가 많았다. 나에게 미술이, 안 해서 못하는지 못해서 안 하는지 모를 그런 일이었던 셈이다.


회사 근처 마트에 문화 센터가 있었는데, 찾아보니 연필 스케치 수업이 있었다. 수업 시간도 7시부터라 퇴근하고 가면 되는, 딱 알맞은 강의였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마음으로 등록! 수업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적성 찾기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수업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수업 덕에 낭만적인 시선을 하나 얻었다.


수업은 선생님 포함 여섯 명 정도로 이루어졌다. 각자 진도에 맞추어 1:1로 가르쳐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제 막 등록해 선 긋기를 연습하고 구를 그렸다. 다른 분들은 수강한 지 꽤 오래되었는지 몇 주 뒤에 열릴 문화센터 연말 전시회를 준비했다. 각자 조용히 자신의 그림 속에 들어갔다. 사악사악 스케치북을 가르는 연필 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가끔 두런두런 선생님과의 수다가 오갔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워낙 조용하고 좁은 곳이다 보니 그분들의 대화가 내게도 들려왔다.


“선생님, 저는요. 요즘 꽃 이름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멋져 보여요.”


나보다는 나이가 많고, 우리 엄마보다는 어려 보이는 수강생 한 분이 말했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스케치북에는 화병과 꽃이 그려져 있었다. 꽃잎을 매만져 그리며,


“예전에는 수학 잘하고, 그 있죠, 막 멋~있는 이론을 줄줄 읊는 그런 사람요. 그런 사람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지적인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요즘에는 꽃 이름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멋있더라고요. 길 가다 핀 들꽃 같은 거요. 우리는 이름을 모르잖아요? 그냥 노란 꽃 해버리고 말잖아요? 그런데 옆에서, 그 꽃은 금괭이꽃*이야. 하고 말해 주면 그 사람이 그렇게 멋있어 보여요.” 하셨다.


선생님께 고개를 돌리시고는 “역시, 내가 늙었나 보죠?” 하며 웃으셨다. 그분이 그리는 그림보다도 더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그때 나는 ‘낭만적인 이야기다.’ 생각하며 그 대화를 마음속에 담아 두었는데, 요즘 들어 그날의 대화를 자꾸 꺼내 본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그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아서.


내게는 ‘꽃 이름’ 같은 존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별자리 이름’이다. 별자리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무척 멋져 보인다. 어릴 때는 별자리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나이 든 지금에야 그런다. 아무래도 갈수록 별 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일까. 내가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별자리라고는 국자 모양 북두칠성과 사람 모양 오리온자리뿐이지만... 언젠가는 밤하늘의 별에게도 그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별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수 있도록**.





*당시 직접 들은 꽃 이름은 기억나질 않아 들꽃 중에 노란 꽃을 찾아 이름을 넣었습니다.

**김춘수, 〈꽃〉 2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에서 따왔습니다.

***이미지는 오리온자리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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