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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30. 2019

모나고 못난 마음은 모든 것을 밉게 보이게 했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나무

아침부터 분을 삭이지 못해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미역국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꾸역꾸역 삼킨 아침. 사소한 말로 시작해 상처 주는 말로 끝나는 다툼 끝에, 애꿎은 현관문만 걷어차고 출근한 상태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 꼴이었다. 이 놈의 성질머리. 좀 죽이고 살아야 하거늘. 


덕분에 오전 내내 마음은 딴 데가 있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은 매운 거 먹고 싶어요. 속 확 뚫리는 그런 거요.” 함께 점심 먹기로 한 과장님께 메신저를 보냈다. 아침부터 씩씩거리고 돌아다닌 나를 보셔서 그런 건지, 더는 묻지 않고 “그럼 ㅇㅇ 갑시다.” 하셨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매운 걸 먹겠다고 하니 의아할 법도 한데.


김치 팍팍, 고기 팍팍 넣어 얼큰히 끓인 김치찌개. 흔한 김치찌개일 뿐인데 매운 기운이 솔솔 올라와 계속 기침이 나왔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누가 뺏어먹을까 두려운 것마냥 정신없이 먹었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니 아침부터 쌓인 화도 좀 누그러든 기분이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과장님이 길 건너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리님, 저 나무 좀 봐요. 되게 멋있지 않아요? 저 나무 예쁜 걸 이제야 봤네?”


그 나무는 회사로 올라가는 언덕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나무 이름은 모르지만* 몇 달 전 나무에서 하얗고 커다란 꽃, 솜뭉치 같기도 하고 구름 뭉치 같기도 한 꽃이 핀 것을 보았다. 지금은 꽃이 지고 가지와 이파리만 남은 상태였다. 특히 요즘에는 쥐똥같은 검은 열매가 잔뜩 떨어져 있기도 해서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발 밑을 보느라 나무를 볼 일이 별로 없었다.


“저 나무요? 아니, 진짜로 예쁠 땐 모르시더니. 오늘은 날도 우중충하고, 나무도 축 쳐져 있어서 오히려 음산한 느낌인 걸요?”


내가 답했다. 답을 하고 나서,


“아, 오늘 제 기분이 우중충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하고 사족을 붙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말로 내뱉고 나니 ‘정말로 그랬구나’ 수긍이 갔다. 나도 그 나무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꽤 있으니까. 나무에 꽃이 없고 잎이 적을 때도 멋진 나무라고 생각한 적이 꽤 있으니까. 


오늘처럼 모나고 못난 마음은 모든 것을 밉게 보이게 했다. 같은 나무를 보고도 나쁘게 바라보았구나. 참 한심하다. 이 마음이 더 커져서, ‘내가 미운 마음 품었구나’도 깨닫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처럼 나무를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무가 내게 말해주면 좋겠다. 정신 좀 차려라. 




*참고_뒤늦게 나무 이름을 찾아봤습니다. ‘귀룽나무’라고 하네요.

다음 백과사전 ‘귀룽나무’ 링크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6XX124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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