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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31. 2019

나무에 핀 연꽃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나무

몇 년 전, 향초가 한창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집들이 선물 1순위는 향초나 디퓨저이긴 하지만 그때만큼은 아닌 것 같다. 그때는 고개만 돌리면 향초 가게가 있었다. 나 역시도 향초 가게에 구경 한 번 하러 들어갔다가 향초에 푹 빠졌다. 


그 무렵, 엄마가 불면증으로 고생하셨다. 하루는 재스민 향(정말 향이었다)을 피워드렸더니 잘 주무셨다. 향은 자취할 때 간혹 켰던 것이 두어 개 남은 것이었고 내 관심은 자연스레 향초로 향했다. 자주 켤 생각을 하니 불이 직접 붙는 향, 향초보다는 불빛 열로 향을 녹이는 방식이 좋아 보였다. 어디 브랜드는 왁스에 안 좋은 성분이 있다, 어디 브랜드가 좋다. 그런 정보들도 뒤적거렸다. 


친환경이라는 소이 왁스로 캔들을 만들었다는 가게에 갔다. 재스민 향초를 찾아간 것이었는데, 막상 사 온 것은 재스민과 매그놀리아가 함께 있는 향초였다. 매그놀리아(Magnolia), 목련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은 2층에 있었다. 학교 옆에는 어린이집도 있었다. 2층 창 너머 내다보면 어린이집이 바로 보였다. 커다란 목련 나무와 함께... 처음부터 그 나무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꽃잎이 떨어져 발에 차이면, 본래 가진 하얀색은 온데 간데 없이 거뭇거뭇 지저분했고 바나나 껍질처럼 미끄러웠다. 관심보다 피해 다니는 존재였다.


그래도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불 때 들어오는 목련 향은 좋았다. 마음까지 편해지는, 은은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향에만 온 신경을 쏟고 싶을 때도 있었다. 물론 그랬다간 선생님께 조는 것이냐며 꾸중을 들었겠지.


목련 나무가 그리워진 건 오히려 학교를 떠나고 나서였다. 대학교 4학년 봄, 교생실습으로 모교를 찾았다. 나는 3년 넘게 학교를 떠났다 돌아온 것인데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매일 그 나무를 지날 때는 피해 다닐 요량으로 땅에 떨어진 꽃잎만 바라봤는데. 이제 실습 중인 한 달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자꾸 나무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땅에 떨어진 꽃잎을 봤을 때는 몰랐는데, 나무에 핀 연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목련(나무 木, 연꽃 蓮)이잖아?” 하고 그때야 깨달았다.


그때 차곡차곡 모아둔 목련 향이 내 몸 어딘가에 있었나 보다. 향초를 켜니, 또다시 교정을 거닐고 있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인 나인지, 교생 실습 중인 나인지 알 수 없는 추억 속에서 꿀잠을 잤다.


요즘에는 향초에 관심도 시들해져서 더는 향초를 켜지 않는다. 그 대신 길 가다 목련 나무를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목련 향에 흠뻑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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