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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01. 2019

한 곳에 있으면 안주하게 되더라고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나무

사립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교생 실습(사실 교육 실습이 맞는 말이다)을 모교로 갔다. 심지어 모교로 실습 가고 싶어서 교수님께 부탁해 실습 나가는 일정도 조정했다. 모교에서 실습생을 4월에만 받는데, 우리 대학교의 실습 일정은 5월이기 때문이었다. 못 들은 수업은 알아서 채워야 하는 불이익이 있었지만 후회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학생에서 교사로, 4년여 만에 돌아온 학교는 달라진 게 없었다. 나무며, 꽃이며 여전히 아름다운 캠퍼스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 정도?


나와 같은 기간에 실습을 한 교생 A는 나와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였다. 같은 반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오히려 실습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한 달간 같이 생활하니 3년간 친구였던 것처럼 긴밀해졌다. 같이 학교를 다닌 3년간은 복도에서 스쳐도 인사조차 안 하던 사이였으면서...


“선생님들을 뵈니까, 선생님들이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어.” A가 말했다.


“그러게. 항상 여기 계시니 정말 나무 같다. 내가 언제 찾아와도 이 자리에 계셔줄 것 같아.” 내가 거들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정말 교사가 될 수 있을까?” A가 말했다. 임용고시의 어려움이라든지, 교사로서의 마음가짐이라든지 그런 이야기가 이어 나올 줄 알았다. 뜻밖에도 A는,


“늘 제자리에 있는 거잖아. 나는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아니 물론, 지금 선생님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는 말이야. 가만히 도태되는 사람이 될까 봐. 한 곳에 있으면 안주하게 되더라고, 내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나는 사범대를 다니면 자연히 교사가 되겠거니 했다. 졸업하며 당장 임용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늦더라도 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학하는 날부터 ‘오늘부터 내 꿈은 교사인 걸로 하자.’ 그렇게 정해버렸던 걸까. 고민 없이, 생각 없이 그랬던 걸까.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대학교로 흩어졌다. A의 소식은 얼마 안 가 끊겼다. 나는 보다시피 교사가 되지 못했다. 이런 말을 쓸 때면 나는 늘 고민한다. 교사가 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전자는 현실적인 내용(이자 팩트)이고 후자는 내 마음 상태다.


회사에 퇴사 선언을 한 오늘. 저질렀다고 말하자니 고민의 시간이 길었고, 통보했다고 말하자니 각오가 부족하다. 아무튼, 퇴사 선언을 한 오늘 갑자기 그때 그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그동안 내가 안주하며 살았다고 말하려는 것인지, 뿌리째 뽑혀버린 나무라 곧 죽을 거 같다고 말하려는 것인지.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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