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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02. 2019

그래도 잠시 내 인생에 쉼표를 찍고 싶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나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났다. 주르르. 폭염경보가 울렸다. 오늘 같은 날에는 나무 한 그루가 절실했다. 울창한 숲은 바라지도 않았다. 내게 그늘 한 자리 마련해줄 나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서 있는 것 같았다. 회사를 나가면 내 꼴도 그와 같아질까.


어제, 퇴사를 선언했다. 어제는 팀장 면담, 오늘은 부서장 면담. 예상했던 것보다는 무탈히 퇴사 과정을 밟고 있다. 무사히. ‘무사히’가 맞나? 마지막 남은 한 그루 나무 그늘 아래 있는 기분이다. 마지막 근무일 이후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서 있어야겠지. 볕이 나면 나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나 혼자 오롯이 맞이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쏟아졌는데.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 느낌이다. 밤하늘에 빼곡히 떠 있는 별들이, 해가 뜨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게 이유를 묻는 그분들께, 딱히 드릴 말씀이 없었다. 


쉬고 싶어서요. 놀고 싶어서요. 너무 대책 없는 대답이었을까.


힘든 일이 무엇이었냐, 어떻게 해 주면 좋겠느냐. 그런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분명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얘기를 하자니 지금은 괜찮고, 저 얘기를 하자니 너무 구차하고. 원하는 게 없으니 원하는 걸 말해 보래도 그저 웃을 뿐.


아직 퇴사가 실감 나진 않는다. 눈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 그런 건가. 내가 퇴사하긴 하나? 곧 백수가 된다는 말이지? 감이 잘 안 온다. 언젠가 ‘회사’라는 나무의 그늘이 다시금 그리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퇴사의 기쁨은 한순간.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잠시 내 인생에 쉼표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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