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Jul 29. 2019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게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나무

출근길, 지하철역까지는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버스정거장은 집에서 걸어서 7~8분 정도 거리에 있다. 버스에 막 오르면 다음, 그다음 정거장까지 일직선으로 달린다. 내가 타는 정거장까지 포함해 세 정거장이 나란히 놓여 있는 셈이다. 버스가 달리는 길은, 가는 길 하나 오는 길 하나인 2차선 도로다.


그 길에는 도로만 있는 것은 아니고 양쪽에 인도도 있다. 하지만 그 길로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낮에도 오가는 사람이 몇 없고, 밤에는 유흥업소 간판 불빛으로 번쩍이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 그 길을 걷다가 보도블록이 갑자기 흔들려, 그 안에 고인 물이 내 운동화를 침범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지난가을 마을버스를 기다리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평소에는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만 바라보고 서 있다. 그날따라 버스는 오질 않았고 지루해진 나는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유흥업소 간판이 가득해 잘 바라보지 않던 그 길을, 그날에야 온전히 바라본 것이었다.


길가에 은행나무가 일렬로 쭈욱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은 높았고 무척이나 파랬고 은행나무는 물감을 찍은 듯 노랬다. 내가 더 미적 감각 있는 사람이었다면 더 멋있게 그날의 풍경을 묘사할 수 있으련만. 파란 도화지 위에 노란 물방울 같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어 슬프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못지않은 풍경이었다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늘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오가면서도, 항상 이 정류장에 서 있으면서도 그 풍경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란한 간판에 색안경을 끼고 그 길을 바라봤었나 보다. 가게야 들어왔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길은 그저 길일 뿐인데. 이 길처럼, 가까이에 멋진 풍경을 두고도 편견으로 바라봐 놓치고 있는 곳이 있겠지. 비단, 풍경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밤에는 그 길을 지나는 게 조금 무섭다. 갑자기 가게 문을 벌컥 열고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비틀 나올까 봐서. 그래도 낮에는 종종 그 길을 지난다. 그 길을 걸을 때는 자주 나무들을 본다. 바람 불면 사아아 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계절마다 색동옷 입고 나를 반겨주는 나무들.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준 나무들이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에 첫 유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