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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l 28. 2019

내 생에 첫 유서였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죽음

도덕 시간, 유서 쓰기를 숙제로 받아 들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야, 무슨 숙제가 이러냐. 써놓고 죽기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그런 심한 말도 가끔 들렸다. 뉴스에서 자살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분들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고. 무조건 반항부터 하고 보는 중학생이기도 했고.


생각하기도 쓰기도 싫은 주제를 받아 들고 머릿속이 하얬다. 억지로라도 숙제를 하려 책상 앞에 앉았는데 무얼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사고사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터라 유서 한 장 없었다. 나 죽으면 어떻게 해달라 평소에 말해두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 생각을 했다. 창 밖의 해는 점점 기울어 노을 지고, 어둠이 깔린 밤이 되어서야 겨우 숙제를 써 내려갔다. 내 생에 첫 유서였다. 


그리고 돌아온 도덕 시간. 앞자리부터 한 명씩 일어나 발표를 했다. 처음 몇몇은 진지하게, 몇몇은 가볍게 유서를 읽었다. 하나둘 발표가 끝날수록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고 어느새 울음바다가 되었다. 눈물이 많은 나는 첫 줄을 읽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먼저 가는 불효녀를 용서하라는 흔한 말. 할머니가 날 알아볼 수 있게 예전 사진을 넣어달라는 조금은 덜 흔한 말. 20년도 더 된 이야기라 내용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말을 담았던 것 같다.


유서 쓰기 숙제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죽음은 내게서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의 주어로 ‘나’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예절(장례식장 예절)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며,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내 생이 시작된 날이 저만치 멀어져 가면 내 생이 끝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겠구나 어렴풋이 느낄 뿐. 그날을 알 수 없어 두렵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과나무 한 그루는 못 심을망정, 하고 싶은 일은 하며 살아야 하는데. 자꾸만 핑계를 대며 미루는 내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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