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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10. 2019

꿈꾸는 일이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땀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무실 안에서 근무했다. 여름에는 에어컨 빵빵하고 겨울에는 난방 빵빵한 곳. 물론 내 자리가 창가 자리라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적게 오고 겨울에 외풍이 심해 손이 시린 날도 많았지만 말이다. 아르바이트까지 통틀어 내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한 적은 단 한 번.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했던 주유소 아르바이트다.


“지금 아니면 언제 네가 이런 힘든 일을 해보겠니?”


아빠의 그 한마디에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주유소는 집에서 버스로 두세 정거장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시외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주유소라 일반 차량보다는 단골 화물차가 많이 오는 곳이었다. 주유소에는 사장님, 재무를 관리하신 소장님, 우리의 식사를 책임져준 이모, 베테랑 일꾼인 아저씨, 나와 동갑인 조선족 남자아이 이렇게 다섯이 근무하고 있었다.


소장님은 짧은 방학이었지만 주유소에서 일하는 나를 신기해하셨다. 조금은 기특해도 하셨다. 요즘 애들 힘든 일 안 하려고 하는데(놀랍게도 요즘 어른인 내가 그때는 요즘 애들이었다) 요즘 애들 같지 않다. 하는 칭찬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말씀도 종종 하셨다.


하루는 소장님이 내게 물으셨다.


“10년 뒤에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니?”

“글쎄요. 임용고시 합격하면 국공립학교에 있을 테고, 합격을 못하면... 학원 강사라든가. 뭐가 되었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해?”

“제 전공이기도 하고...”

“전공대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장님이 웃으셨다. 비웃는 건 아니었고. 뭐랄까. 네가 조금 더 살아보면 알게 될 거야.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때 나는 소장님의 질문을 “넌 커서 뭐가 될래? 네 장래희망은 뭐니?” 하는 식상한 질문으로 생각했었다. 그 질문이 10년은 훌쩍 지난 지금의 나에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나는 학교나 학원에 있지도 않고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지 않다. 전공을 살린 건가 싶다가도. 대리님, 전공이 뭐예요? 하는 질문에, 국어교육이요. 하면 다들 화들짝 놀라는 걸 보면 전혀 못 살린 건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10년 뒤면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내일모레 백수인 어른이 되었다.


“10년 뒤에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니?” 그 질문이 내게 다시 묻는다.


“너는 꿈이 뭐니? 너는 내일 어떤 사람이고 싶니? 네가 그리는 네 미래는 어떤 모습이니?”


답을...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꿈꾸지 않았다. 물론 막연한 꿈은 있었다. 하지만 잠깐 스친 생각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어떤’을 설명한 단어가 없었고, ‘그려’ 보지 않았으니까. 꿈꾸는 일이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 같다. 나 스스로 나를 믿고 내일을 그리는 일이니까. 노희경 작가가 말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내가 생각한다. 지금 꿈꾸지 않는 나, 유죄.


한 가지 분명한 건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직장인이라면 글 쓰는 직장인이고 싶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글 쓰는 선생님이고 싶다. 이제 나는 또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뭐해 먹고살까. 그러나 그런 현실적인 고민에 앞서, 꿈을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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