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Aug 09. 2019

달리 생각하니 다른 길이 보였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땀

출근 후 처음 한 일은 사직서를 내는 일이었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가 ‘한다’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내가 퇴사하는 건가? 이걸 내면 이제 무를 순 없는 거지? 에이,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하면 뭘 해. 생각은 그동안 많이 했어. 그래, 얼른 내자.


“이사님, 사직서입니다.”


이사님이 나를 힐끗 보시더니 입을 삐쭉 내미셨다. 할 말이 많은데 참겠다는 눈치. 내심 섭섭도 하셨으리라. 작년에 그렇게 힘들던 때는 잘 버텨놓고 이제 조용하다 싶더니 갑자기 그만두겠다니. 흐지부지 결과를 못 낸 작년 프로젝트를 올해는 잘 해낼 줄 알았는데. 돌연 퇴사?!


결재를 받고 자리에 돌아오니 카톡이 와 있다. ‘대리님, 그렇게 좋아요?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다니...’ 그제야 ‘아, 나도 모르게 웃었나 보다’ 했다. 입가에 헤실헤실 웃음이 맺혔다.


친한 언니들에게 퇴사 소식을 전했다. 왜 그만두는 거냐는 질문 다음으로, ‘네가 잘 고민했겠지. 그동안 많이 생각했겠지.’ 하는 말이나 ‘그래, 너도 잠시 쉬어야지.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그런 말을 들었다. 내가 열심히 살았구나. 요령 피우며 살진 않았구나. 적어도 내가 허투루 사는 애는 아니었나 보다. 나를 믿어주는 지인들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브런치 앱이 울렸다. (아직 내가 독자가 별로 없어서? ^^) 평소에는 잘 울릴 일이 없는 앱이었다. 조회수가 왜 이렇게 높지? 통계에서 인기글 랭킹을 보니, 어제 올린 글이었다. 역시 퇴사 글이라서 그런가 조회수가 높구나. 하고 말았다.


점심 먹고 다시 핸드폰을 켰더니, 아니 이게 웬일이야! 평소보다 많은, 정확히 말하자면 최대 조회수보다 5배, 평소 조회수보다 10배는 높은 조회수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서 유입 경로를 살펴봤다. DAUM 모바일 화면의 추천 탭에 내 글이 올라와 있었다. 와, 대박!


예전에 블로그 글로 DAUM 메인 화면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하루 종일 즐거웠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내가 사직서를 낸 날인데, 또다시 포털에 올랐다. 깜짝 놀랐고 기뻤다. 한편으로는 ‘퇴사’라는 두 글자에 내 글을 클릭했을 많은 이들이 떠올라 씁쓸했다. 다들 퇴사를 꿈꾸며 버텨내고 있구나.


예전에는 내가 흘린 땀을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 여겼다. 지금은 조금만 참자. 지금은 조금만 버티자. 이겨내자. 조금만, 조금만. 그런 악착같음으로 참기만 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잘못된 길, 이를 테면 평범한 흙길로 갈 수도 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진흙탕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달리 생각하니 다른 길이 보였다. 지난 10년간 내가 좋아한 일을 해왔으니 진흙탕 길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미안하고.


돌이켜보면 보상을 바라고 한 일에는 오히려 보상이 없었다. 내가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눈치챈 것처럼 말이다. 반면,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해낸 일에 보상이 생겼다. 우연히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흘린 땀에 복리로 기쁜 일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련다.


오늘 갑자기 빵 터진 조회수를 보면서, 지난 76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온 나에게 박수를, 항상 믿고 지켜봐 준 내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퇴사를 꿈꾸며 오늘 하루를 버텨낸 이름 모를 직장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이 퇴사하기 딱 좋은 시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