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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08. 2019

지금이 퇴사하기 딱 좋은 시기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땀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다. 현관문을 나선 시간도 늘 나서던 그 무렵이었고 늘 걷는 그 길을 걸었다. 같은 시각에 버스를 탔고, 당연한 말이지만 버스가 달리는 구간도 변함이 없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창문에 광고 시트지가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았고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었다는 것 정도? 아니야, 그것도 이유는 못된다. 그 자리를 처음 앉아본 것도 아니었고 버스 타면 늘 핸드폰을 하는 걸...


어느 하루로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그날. 나에게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공포. 그날 겪은 일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가 ‘공포’다. 이대로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공포였다.


버스에 타고 두어 정거장 지날 때까지는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한 정거장, 또 한 정거장... 버스는 여전히 달렸다. 그렇게 일곱 정거장쯤 지났을까? 갑자기 멀미가 나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핸드폰을 계속 봐서 그런가 싶어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버스가 코너를 돌자 어지러움은 두근거림으로 바뀌었다. 며칠 전부터 이유 없이 두근두근한 날이 있었지만 커피를 많이 마셨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겪은 두근거림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나고 손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눈 앞이 핑 돌았고 겁이 났다. 이대로 내가 정신을 놓을 수도 있겠다고 느껴져서.


목적지까지는 두 정거장 전이었다. 아차 하면 바로 내려야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휘청했다. 이를 악 물고 버텼다. 버스 뒷문이 열리고 내가 가장 먼저 내렸다. 거의 뛰어내린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지하철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나는 정류장 벤치로 달려가 앉았다. 앉자마자 손을 뒤로 돌려 속옷의 버클을 풀어버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 일을 겪고 얼마 안 가 병원을 찾았다. 심혈관질환 가족력이 있어 심전도 검사부터 했다. 아무 이상 없었다. 유방과 갑상선 쪽도 검사했는데 이상 없었다. 혹시나 싶어 검사한 식도염도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선택지는 스트레스. 어쩌면 그날 내가 겪은 일이 공황이었을까?


정신과 병원의 문을 두드리진 않아 답은 모른다. 이것저것 검사하면서 시간이 지난 탓인지 몸이 좀 나아진 것 같아 원인 찾기를 멈췄다. 그래도 한번 두드려볼 걸 그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스트레스의 한가운데에 있던 것 같다. 참고 참고 참다가, 내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단 사실조차 눈을 감아버린 상태이지 않았을까.


그 뒤로 반년 정도 흘렀다. 나는 곧 퇴사한다. 사람들이 자꾸 왜 퇴사하냐고 묻는다. 잘하고 있는데 왜 나가냐고. 나갈 이유가 없지 않냐고.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러게, 나 왜 나가지? 왜 퇴사하기로 마음을 굳혔더라?’ 그런 생각이 들면 그날의 공포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더는 안 되겠다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심호흡하면서 ‘이러다 열차 놓치는데, 지각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손 떨림이 잦아들고 두근거림이 가라앉으니 ‘이제 괜찮아진 건가? 연차를 쓸까? 아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야겠다. 열차 놓치기 전에 얼른 가야지. 지각하기 전에 가야지.’ 그렇게 생각해버린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래서 그때,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퇴사하고 싶다고 외칠 때는 마음이 심란했는데 퇴사하겠다고 말하니 오히려 고요하다. 정해진 길은 하나도 없는데도. 그 일을 겪고 얼마 안 가 바로 사표를 냈다면 지금처럼 차분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 ‘퇴사 적기’인 듯하다. 막상 회사를 떠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괜찮다. 지금이 퇴사하기 딱 좋은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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