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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12. 2019

마음의 허기일 테니까

항상 미친 듯이 허기가 졌어도 진짜 배가 고픈 적은 없었다

내 몸은 우리(cage)다. 내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다. 지금도 여기에서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이 안에서 나갈 방법을 알아내려고 나도 노력을 하고 있다. (p.38)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록산 게이 저)*의 한 구절이다. 며칠 전 읽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백세희 저)에서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보고 내용이 궁금했다. 따로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에 간 김에 빌려 왔다.


이번 주부터 ‘우리’에 대해 쓰려고, 집을 나서며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그런 우리를 생각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저 글귀를 마주한 순간, 내내 생각했던 ‘우리(we)’가 달아나버렸다.


다 읽지 못한 책이라 책이 어땠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항상 미친 듯이 허기가 졌어도 진짜 배가 고픈 적은 없었다(p.122)’고 고백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몇 해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고 또 먹고, 한시도 입을 쉬지 않고 먹어대던 그때의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때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집에 내려왔을 때였다. 임용고시를 봤고 1차 시험에 합격했고 2차 시험을 봤고... 떨어졌다.


초수 합격률이 좋지 않아 첫해에 합격할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막상 1차 시험을 보고 가채점해보고는 속이 상했다. 다른 사람이 더 잘 본 것 같아서(임용고시야 상대 평가니까). 1차 합격자 발표 후 2차 시험일까지는 일주일뿐이라 발표 전에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잘 안 잡혔다. 2차 준비는커녕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런데 덜컥, 1차 시험 합격이란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준비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2차 시험장을 나오며 지난 한 달을 허망하게 보낸 내가 너무 미웠다.


2차 시험의 결과는 당연히도 불합격이었다. 짐을 싸 들고 고향에 내려오긴 했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냥 먹었다. 그때 우리 집은 식당을 운영했다. 서빙이나 설거지를 도우며 식당을 어슬렁거리다가, 집에 돌아올 때 식빵 한 줄이나 시리얼 한 통을 샀다. 배도 별로 안 고팠는데 정신을 차리면 식빵 한 줄이 사라졌었다. 시리얼 한 통, 우유 1,000㎖도 이틀이면 동이 났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왔으면서도 저녁에 식빵을 먹고, 집에서 시리얼을 먹었으면서도 식당에 가면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남김없이 먹었다.


문제는 이런 이상 행동을 나도, 엄마 아빠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어느 날 아빠가 설거지하는 내 뒷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훗날 아빠 말씀에 의하면, 우리 딸 맞나 싶을 정도로 뚱뚱해진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2주 만에 13kg이 쪄 있었다. 갑자기 불어난 몸을 감당하지 못해 계단에서 구르기도 했다. 걷기만 해도 발목과 무릎이 아팠다.


갑상선 이상이나 당뇨일까 봐 병원을 찾았다. 아무 이상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냐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정말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최근에 생긴 환경 변화를 말해달라고. 음, 곧 졸업해서 고향에 내려왔고요. 얼마 전에 임용고시를 봤어요. 1차는 붙었는데 2차에서 떨어졌어요. 나는 거기까지밖에 말하지 않았다. 더는 말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그래서 더 말하지 못했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의 저자, 록산 게이가 겪은 일에 비하면 내 경우는 감기 수준이지 않나. 그래도 그때 엄마는 내가 나쁜 맘을 먹을까 봐 살 빼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책을 다 읽진 못했지만 록산 게이가 말하는 배고픔의 이야기는 사실 아픔의 이야기라는 것은 알겠다. 몸의 허기가 아니라 마음의 허기일 테니까.





여담 1_ 책을 다 읽었는데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 이 글을 얼른 고쳐야겠다.

여담 2_ 그때 찐 살은 조금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 십여 년도 더 지났으니 이쯤 되면 그냥 내 몸이려니 해야 하나 보다.



*록산 게이 저, 노지양 역,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사이행성,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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