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를 드러내며 글 쓰기는 어렵지만, 오늘도 쓴다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잘 쓰지 않았다. 잘 쓰고 싶은 만큼 잘 쓰지 않았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농담 따먹기 같이 보이지만 사실이다. 애정 하는 만큼 두려움도 깊었다. 잘 쓴 글이 어떤 글인지 너무도 잘 알아서. 내가 정말 혼신을 다해 쓴 글이 엉망진창인 걸 내가 가장 잘 알아서. 잘 쓰지 않았다. 나에게 글쓰기란 특출 난 재능이 아니라 어설픈 재능 정도였으니까. 눈에 띄게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읽을 만한 수준이랄까.
글을 잘 쓰지 않은 이유에는 또 한 가지가 있었다. 글에 자꾸 내가 묻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일기장을 들킨 기분이었다. 네 글을 읽는데 네 말투로 읽혔어. 너 그런 일이 있었어? 네 글에서 봤어. 그런 말이 싫었다. 내가 쓴 글이 아닌 척 꾸며내려고 애썼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도려내고 두루뭉술하게 썼다. 그렇게 쓴 글은 이도 저도 아닌 모양이라 곧 버려졌다. 그 글을 쓴 나조차도 그 글을 버렸다. 아마도 그때 나는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내가 묻어나는 걸 싫어했을 수밖에.
내가 쓴 글이니 나 같을 수밖에 없고, 내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인정하게 됐다. 시간이 해결해줬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봤는데, 결국 나는 나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체념? 일종의 체념이긴 한데, 긍정적인 체념이었다. 인정하게 됐다. 내 글이 나라는 걸...
나다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도 그 점이 가장 어려웠다. 오늘로 80번째 글을 쓰고 있지만 자꾸 꾸며내는 글, 나 아닌 척하는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여전히 이 글이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고 쓴다. 그래, 나 이 정도밖에 못 쓴다. 이 모양 이 꼴인 걸 어쩌라고. 약간의 뻔뻔함과 함께...
작년 가을,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김은경 저)*를 읽었다. 감히 말하자면 내 글이 나라는 걸 인정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을 줬다. 9년간 에세이 전문 편집자로 일한 저자가 에세이 쓰는 법을 쉽게 설명해준 책이다. 처음엔, 에세이 편집자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펼쳤다. 다 읽고 나니,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됐다. 나를 드러낼 수 있게 용기를 줬다. 다음 내용이 특히 그랬다.
‘구체적인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에세이란 사적인 스토리가 있으면서 그 안에 크든 작든 깨달음이나 주장이 들어 있는 글입니다.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막상 써보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은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누가 써도 상관없을, 관념적이고 뻔한 글을 많이들 씁니다. 인생을 즐겨라,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마라,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은 아주 작은 것이다 등 어디선가 많이 본 글들의 변형 버전을 말이죠. 물론 그중 훌륭한 작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이야기에는 힘이 없습니다.
나는 브런치뿐 아니라 블로그도 있다. 블로그에는 서평이나 영화 리뷰, 사용 후기 등을 주로 올린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다. 블로그처럼 정보성 글도 아닌데,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봐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난다. 감사하게도...
내가 털어놓는 것은 내 이야기일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나와 같은 이야기처럼 읽히는 것일까. 나도 누군가의 글을 보며 나도 이랬어! 하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글을 쓴 나와 글을 읽는 너,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나를 드러내며 글 쓰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 그래도 내 글이 ‘우리 글’로 읽히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다.
여담_『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서평이 궁금하시다면 https://damhae-su.tistory.com/19
*김은경 저,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호우,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