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뿐
소속이 간절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로 엮일 수 있는 사이가 필요했다. 회사 앞에는 ‘우리’라는 말보다는 ‘이 놈의’라는 말이 붙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였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땐 더욱, 우리 회사가 됐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조사에 참석하는 일이 늘었다. 누군가의 기쁜 날을 축하했고 슬픈 날을 위로했다. 그 누군가는 내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이일 때도 있었고 그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이일 때도 있었다. 때로는,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직장 동료가 그 누군가의 자리를 차지했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 발을 내밀면서 소속이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많았다.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 때 제출할 재직증명서를 떼줄 회사가 필요했다. 신용카드를 만들 때, 대출을 받을 때 전화 한 통 서류 몇 장으로 OK 날 수 있는 근로자 신분을 주는 곳. 모르는 사람과 인사할 때 꺼내들 명함도 필요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전학을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벌어진 자기소개 시간이 너무 싫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이미 알고 있을 그때, 나라는 이방인이 나타나 나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나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최근 몇 년간, 나는 명함 한 장으로 나를 소개했는데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 △△팀, 대리 ○○○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구구절절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지만 그게 ‘내’가 아님을 안다. 내 앞에 붙은 온갖 꾸밈말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언제 어느 때고 바뀔 수 있는 일회성 말뿐임을 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 가짜 이름에 속아왔던가. 내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착각하던 나날들.
퇴사를 앞둔 나는, 더는 꾸밈말이 없다. 이제는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뿐. 나를 표현할 말들을 찾아야겠다. 어디 소속 누구라는 소개 대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하루 중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일은 무엇인지를 말하고, 어제 겪은 어떤 일에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를 말하는... 너무 감상적인가? 그럼 뭐 어때. 그런 봄비 같은 말들로 나를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의_ TMT(Too Much Talker)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