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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19. 2019

오늘의 나에게도 노을, 물든다

오늘도 무사히 보냈구나 안도감에 물들게 하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퇴근시간 해 지는 것을 보며 안다. 퇴근시간에도 밝을 때 여름이구나 하고, 퇴근시간부터 어두컴컴할 때 겨울이구나 한다. 요즘처럼 퇴근시간에 노을을 만날 때는 뭐랄까, 기분이 참 묘하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이맘때에는 퇴근 무렵, 붉게 물든 하늘을 볼 수 있다. 퇴근시간이 늦을 때에는 회사 입구에서 만나기도 하고, 조금 이를 때에는(그래봐야 정시 퇴근이지만)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마주하기도 하고. 특히 2호선이 한강을 건너갈 때, 그때 한강에 반짝반짝 노을 맺히면 그게 무척 예쁘다. 구로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지나 독산역을 향해 달릴 때, 빌딩 사이로 붉은빛이 쏟아지면 빌딩은 나무 같고 나는 단풍나무 숲에 있는 것 같다.


몇 주 전에도 참으로 예쁜 노을을 만났다. 퇴근길, 전철역 앞 횡단보도에서였다. 때마침 역으로 열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각도가 절묘하여 저 멀리 노을 속에서 열차가 달려오는 착시마저 느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카메라 속 노을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했다.


파란불이 켜지고도 사람들은 머뭇거렸다. 불 켜지면 호다닥 걸어가버렸을 사람들이, 노을에 취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음에 노을이 묻었다. 그림자가 길었다. 끝내 사진에 다 담지 못한 아쉬움처럼, 미련처럼.


그때 본 노을은 참 신비하고 오묘했는데, 사진으로는 그 색감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 지친 나에게 위로주 한 잔 건네는 그런 색이었는데... 지금 글로 적으려 해도 신비로웠다, 오묘했다, 붉었다 밖에 말하지 못해 한스럽다. 내 말 주머니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내 인생에 그때 그 노을 같은 순간이 있다면 그게 오늘이면 좋겠다. 어느 한 날짜를 콕 집어 말하는 오늘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그런 날이면 좋겠다. 오늘도 살아내느라 지친 발걸음을, 오늘도 무사히 보냈구나 안도감에 물들게 하는, 그런 노을이면 좋겠다. 


오늘의 나에게도 노을,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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