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도서관 애호가라고 말해도 될까
우리 집은 ‘집’이 없었다. 정확히는 ‘내 집’이 없었다. 세 살이를 계속하다 보니 이사도 많이 했다. 그때마다 집을 최종 승인하는 것은 엄마였다. 엄마에게는 몇 가지 이사 기준이 있었다. 교통편이 좋을 것, 큰길 가까이에 있을 것, 대학교나 도서관 근처일 것. 이 정도가 엄마의 기준 중 위치에 관한 항목이었다.
이런 위치 선정 덕분에 항상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해야 할 학창 시절에는 도서관에 잘 가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보다는 구매하는 것을 선호했다. 학교에 도서관이 있기도 했으니 구립 또는 시립도서관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도서관 근처에 살았지만 갈 일이 별로 없었다. 이제는 내가 버는 돈이겠다, 읽고 싶은 책이 보이면 바로 구매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사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 방은 우리 집 세 방 중 가장 큰 방이다. 그런데도 책장을 추가로 들일 공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수험생활을 하며 봤던 책을 한 트럭(사실 한 수레) 버리고도 이 정도였다.
하루는 책장을 바라보는데 헛웃음이 났다. 읽은 책, 읽지 않은 책,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 딱 세 등분으로 나눠졌다. 읽은 책이 1/3 밖에 안 된다니. 충격이었다. 게다가 책이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 과감히 책을 버리기로 했다. 방의 온 면을 차지하던 책장의 절반을 줄였다. 한 번 읽고 읽지 않는 책은 사지 말자.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전자책으로 사서 읽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처음 몇 달은 집에 있는 책으로도 충분했다. 책 읽는 양이 책 사는 양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책을 읽을수록 독서량이 늘었다. 살 수 있는 책보다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아지니 발걸음은 자연스레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 권 읽고 반납하는 길에 또 한 권을 빌려왔다. 퇴근길에 잠시 들렀다 오면 버스도 환승할 수 있어 편했다. 날이 좋은 날에는 집까지 걸어오기도 했다.
오늘도 도서관에 다녀왔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발 닿는 곳에 도서관이 있어 참 좋다. 일주일에 평균 세 번 이상 도서관을 오가고 있으니 이제 나도 도서관 애호가라고 말해도 될까. 엄마는 이런 날을 기대하며 그 오랜 기간을 도서관 근처에서 살았던 걸까. (하긴 요즘에는 공공도서관 사업이 굉장히 잘 되어 있어 곳곳에 도서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선경지명 있는 엄마께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