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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25. 2019

엄마와 매니큐어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보내는 사이, 엄마는 어느덧 환갑이 넘었다

어릴 때, 친척 집에 놀러 가면 언니들이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여줬다. 잘 찧은 봉선화를 손톱에 올리고 랩으로 감싸 두면 손톱에 붉은 물이 들었다. 랩으로 손가락을 묶은 그 시간이 어린 나에게는 꽤 지루한 시간이었다. 못 견디고 빨리 풀어버리면 내 손톱 색인지 봉선화 색인지 구분도 안 가게 연하게 들었다. 그 시간을 잘 버티는 날에는 예쁘게 잘 배기도 했다. 대부분은 너무 오래, 넓게 묶어놔서 손가락까지 멍든 것처럼 들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봉선화보다는 매니큐어가 익숙한 나이가 되었다. 지인들은 알록달록 예쁘게도 꾸미고 다니는데 내 손톱은 여전히 맨 손톱이다. 봉선화를 랩으로 감싼 그 시간을 못 견뎌했던 나는, 매니큐어 냄새를 못 견뎌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매니큐어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싫었다. 꾸미고 만드는 데 재주 없는 똥손도 한몫했고... 네일숍에 가면 잘해준다고 한 번쯤 가보라고들 권하는데 선뜻 발이 가질 않았다.


엄마의 손톱도 항상 맨 손톱이었다. 흰 부분이 나오지 않도록 단정하게 자르는 편이셨다. 나도 손톱에 흰 부분이 자라나면 얼른 자르는 것이 속 편했다. 손톱 걸리적거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가 보다, 이런 건 엄마를 닮은 건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내 편견이었고 착각이었다.


“엄마도 보면 손톱이 참 예쁜데, 이 날 평생 매니큐어 한 번 제대로 못 바르고 살았네.”


엄마랑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문득 손톱을 내려다보시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아빠 손을 닮은 나는 손톱 몸통이 짧은 편인데 엄마는 길쭉했다. 엄마 말씀처럼, 정말 예쁜 손톱이었다. 매니큐어 한 번 제대로 못 발랐어도 예쁜 손톱이랄까.


엄마는 지금 내 나이 무렵부터 식당일을 하셨다. 항상 요리하는 손이라 손톱에 무언가 바를 틈이 없었다. 게다가 손톱이 짧은 편이 위생에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길면 잘랐던 것이다.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보내는 사이, 엄마는 어느덧 환갑이 넘었다.


여전히 나는 손톱 단장에 관심이 없다. 그래도 가끔 화장품 가게에 갈 일이 있으면 매니큐어가 놓인 곳을 어슬렁거린다. 이 색은 엄마 손에 잘 어울리겠다, 이 정도면 엄마도 쉽게 붙일 수 있겠다. 그런 제품이 눈에 띄면 사 온다. 엄마 취향이 아닌 경우도 꽤 많지만 뭐. 


내 할 일 목록에, 엄마와 네일숍에 가는 것이 있다. 지난번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엄마가, 고작 손톱 칠하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도망가버리신 탓이다. 빠른 시일 내에 재도전해야겠다. 혼자서는 안 하려 하실 테니 옆에 붙어서 같이 해야겠다. 혹시 몰라, 내가 뒤늦게 네일아트에 빠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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