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퇴사든 여름휴가든, 어느 쪽이든 괜찮다
2박 3일. 짧게나마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주중 근무, 주중&격주 토요일 근무, 2교대 근무, 3교대 근무. 식구가 넷인데 근무 환경도 넷이라 휴가 일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따져봐도 이렇게 넷이 함께한 경우는 손에 꼽힌다. 부모님께서 식당을 운영하셨던 탓에 휴가라는 게 사실상 없었다. 친척 휴가에 오빠와 나만 보내거나 넷 중 누구 하나 빠지는 날이 대부분. 기억을 더듬어보면 휴가라는 것도 없지 않았나 싶다.
할머니 댁에 가서 집 정리도 좀 하고, 마당에 잔디도 깎고. 근처 관광지로 나들이를 갔다가 맛집을 찾아가고, 저녁에는 밤낚시를 갔다. 3일간 일정을 정리하면 이렇게 간단한데 그것도 여행이라고 여독이 생겼다. 아무래도 잠을 잘 자지 못한 탓인 것 같다. 새벽에 동네 길고양이가 우리 마당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수시로 닭이 울어댔다. 닭이, 아침이 오는 걸 알린다고 누가 그랬나. 날이 밝아와 우는 게 절대 아니다. 수시로 운다, 수시로.
휴가 때 찍은 사진을 넘겨보다가 문득, 내 여독이 휴가 여독인지 퇴사 여독인지 의아했다. 퇴사하자마자 여행을 떠난 내 처지에서는 어느 쪽 여독인지 가늠이 잘 안 갔다. 햇수로 4년 동안 장거리 출퇴근을 해온 탓도 있다. 2층 버스를 타고 달리면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 같았고, 지하철로 한창 달릴 때면 기차 여행하는 것 같았다. 지나간 시간이라고 그 일들을 여행으로 포장하다니! 이건 과대 포장이다, 분명. 지인에게 이런 감흥을 말한다면 ‘그게 바로 퇴사자의 여유’라고 답할 게 뻔하다.
맞다. 퇴사자의 여유라고 해두자. 마지막 월급을 탄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아직 통장에 잔고가 남았으니 말이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생각 없이 지낼 수 있을까?
본래 이번 여름휴가는 내 퇴사와는 무관하게 정했던 것이었다. 가족들도 이 날로 휴가를 냈어야 해서.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 퇴사일과 겹치게 됐다. 다행이다. 퇴사 후 멍 때릴 순간 없이 바로 여행 떠날 수 있어서. 덕분에 출퇴근한 그날들을 여행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내 퇴사에 여행 물을 들였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다. 그게 퇴사든 여름휴가든, 어느 쪽이든 괜찮다. 이 여독이 풀릴 때면 새로운 여행 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