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을 회피한 대가
며칠을 우울함에 빠져 보낸 적이 있다. 지금은 별거 아닌 것 같은 이유지만, 그 당시엔 나름 심각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낮과 밤이 바뀌는 줄 모르게 마구 내리는 비가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아, 나는 늪 안에서 눈을 감고 빨리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짜증, 분노, 슬픔, 우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항상 피해 다니기 바빴다. 반면 기쁨, 즐거움, 행복 등의 긍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를 환영하고 즐겼다. 그 순간만을 즐기기 위해 폭식이나 SNS 중독에 빠진 적도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고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가 나 있을 때 “네가 뭘 잘했다고~”하며 혼이 났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감정에도 ‘허용 기준’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부정적인 감정을 기준 미달로 분류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처음엔 그 감정이 오는 상황을 피하게 된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할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게 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도와달라고 하지 못한다. 또 누군가 나를 서운하게 해도 꾹 참고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이런 상황들을 요리조리 피하다 보면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무엇이 왔는 줄 아는가? 바로 기쁜 일이 있어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좋은 감정은 언젠가 끝난다는 걸 알기에, 나는 기쁨의 순간에도 그다음에 올 불청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결국 긍정적인 감정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 인생은 황무지 같았다. 더 이상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것이 두려운 인생 말이다. 이런 감정의 불평등은 한쪽이 기울어지다 못해 결국 그 위에 있던 모든 것이 우르르 쏟아지게 만들었다.
이제는 즐거움, 기쁨,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 우울함, 분노까지도 온전히 느끼고 싶어졌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아닌 햇빛이 쬐고, 바람이 불고, 가끔은 비도 오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의 끝에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에 대해 적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빈 공간을 채워나가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 주었다. 1년 정도 감정 일기를 쓰며 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내 안에 이만큼이나 많은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감정 일기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의 감정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다. 나는 지금 슬프구나, 서운하구나, 기쁘구나.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일에 도전하게 됐다. 새로운 진로, 취미, 사람들과의 만남 말이다. 그리고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여전히 힘들 때도 있다. 어쩌다 한 번 마음에 폭우가 내릴 때면 그냥 그 밑에서 작은 물통을 가져와 빗물을 받는다. 그리고 고여 있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고 한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건 완벽함보다 작은 노력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맑은 날씨가 좋다고 햇빛이 내리쬐기만을 바라면 결국 가뭄이 온다. 반면 비만 내린다면 모든 것이 물살에 휩쓸려 가버린다. 어느 날은 해가 화창하고, 또 어느 날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 우리 마음은 살기 좋은 생태계가 된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당신의 생태계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