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와 보수성은 반비례한다
나는 매우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다른 전공을 배우려고 했고, 잠깐이지만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왔다. 새로운 취미를 위해 망설임 없이 수업료를 지불하기도 했고, 심지어 사업을 해보겠다며 짧은 준비 끝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도전을 하는 동안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은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잔액이 줄어들수록 나는 점점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달 카드값이 빠져나가는 게 무서워 하루가 느리게 가길 바랐다.
나만의 삶을 찾는 걸 지향하던 내 앞에 빨간불이 훅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취업을 해 돈을 벌어야 했고, 생계를 ‘유지’ 해야 했다.
이전의 나는 사람들이 왜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다운 삶을 사는 게 더 가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에 적신호가 들어온 이상, 도전과 자유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우선시해야 했다.
더 이상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지 않았다.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원래 먹던 것을 고르게 됐다. 다른 취미에 관심이 생겨도 돈이 드는 것이라면 섣불리 시도하지 못했다. 원래는 처음 해보는 직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은 잔고가 나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전공을 살려 취업 준비를 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의 내 인생이 주관식이었다면, 지금은 객관식이 되었다. 심지어 사지선다도 아닌 ‘예’와 ‘아니요’로 구분된 이지선다 말이다.
이전의 나에게 ‘보수’는 진부하고 정체되어 있는 무언가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오니 생존이라는 수면 아래 현상유지를 위해 하염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보수성이라는 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내 자원을 최대한으로 아끼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도전적인 삶을 살게 될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겪은 보수성은 내 깊은 본능 어딘가에 각인되어서, 앞으론 인생의 안전망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도전적인 삶을 뒷받침해주는 최소한의 안전망 말이다.
언제든지 도전이 가능한 안정적인 공간에서 살고 있던 나에게, 생존을 위한 공간으로의 초대는 내 시각을 바꿔놨다. 이전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해봐.’라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생존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그런 노력이 수면 위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보수성. 겪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선택을 하는 것. 이처럼 무언가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수백 번, 수천 번의 발길질조차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가장 치열한 도전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