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목표도 동기도 없었다.
그저 무기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성취는커녕, 그저 버티는 게 전부였다. 그냥 살아져서 살았다.
성취의 경험이 없으니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감각조차 없었다.
뭘 해도 잘하지 못하니 시도조차 두려워졌다.
‘나는 안 될 거야.’ ‘내가 할 수 있을까?’
자기 의심은 나의 디폴트가 되었다.
중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가로막았다.
음악 수행평가 시간,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부끄러워서 자체볼륨을 줄였다.
시험 준비 중에도, 도움을 받을 기회 앞에서도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나는 온갖 합리화와 핑계로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검열의 목소리들은 점점 더 교묘해졌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넌 안 돼”라며 나를 조롱하고 사기를 꺾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나는 호랑이 굴 근처에만 가도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기회가 다가오기만 해도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도망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나는 좌절하고, 도망치고, 후회하며
무력감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무자비한 세상의 공격에 사정없이 얻어맞다
쓰러지기 직전에야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완벽히 준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사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직도 그 목소리에 흔들린다.
그리고 완전히 이겨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라는 걸.
방패가 없어도 묵묵히 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