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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May 12. 2020

그때 그 여행만 떠올리면

코로나 이전에 다녀온 아내와의 하와이 여행

 들어가기에 앞서, 만약 당신이 하와이 여행을 검색하고 이 글을 찾으셨다면 실망하실 것입니다. 이 글은 여행지를 추천하기 위해 정리된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추천하자면,


1. 와이키키도 좋지만, 힐로를 꼭 다녀오세요. 작지만 조용하고, 태초의 자연에서 힐링하기 좋습니다.

2. 렌터카를 빌려 마우나로아 산에서 별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3. 숙소는 많지 않은데, 에어비엔비가 오히려 가성비가 좋습니다.

4. 아카카폭포와 칼스미스 비치도 추천합니다.


여행 관련 궁금한게 있으시다면 댓글남겨주세요.



누군가는 나를 보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겠지만 나에게도 변명은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 반 정도는 과연 그럴 수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는 여행을 사랑하고 즐기는 여행가는 아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일 년에 적어도 두 번, 여름휴가와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올해만 해도 벌써 하와이, 제주도를 위해 비행기를 두 번 탔다. 인천, 전주 등 작고 소소한 여행을 다녀온 것도 몇 번이다. 그럼에도 여행을 싫어한다는 오해를 받는 이유는, 첫째로 집에서 유달리 편안함을 느끼는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가면 가는 것이지만. 여행 한번 다녀오자고 먼저 손을 들지는 않는 탓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껏 나를 이끈 대부분의 여행은 내가 아니라 온전히 친구, 아내, 가족들 덕분이었다. 그러니 내 여행 추억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여행을 대하는 수동적인 태도 말고, 오해를 사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지나온 여행을 추억하는 나만의 버릇 때문이다. 남들이 여행을 추억할 때 휴식, 편안함, 즐거움 등을 떠올린다지만 어쩐지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지나버려 꼬깃꼬깃해진 여행의 기억을 꺼내 보려 하면, 나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후회와 아쉬움 때문에 이내 울적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유독 아내와의 여행을 떠올리면 미안해진다. 그건 여행 중 즐겁지 않거나 잘못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내와의 여행은, 항상 감정의 밑바닥에서 찰랑거리는 내 기분을 턱 밑까지 채워주는 좋은 에너지가 되어준다. 얼마 전 다녀온 하와이 여행이 그랬다. 최근까지도 휴양지를 선호하던 나는, 휴양지를 벗어나 화산섬 빅 아일랜드로 향했다. 전과 달리 전적으로 아내의 취향이 반영된 여행이었다. 빅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두 가지 관광지 중 우리는 힐로를 택했는데, 힐로는 상대적으로 유명한 코나에 비해 규모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숙소는 다소 낡았음에도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평이 좋은 에어비엔비를 골랐다. 친절한 부부가 주인이었던 그 방에서는 밤새 이름을 알 수 없는 (알 필요 없는)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비가 그쳐 맑개 개인 날에는 하늘과 가깝다는 마우나로아 산에 올라 구름을 발밑에 두고 눈 앞의 별을 보았다. 마그마가 굳어진 땅을 밟을 수 있는 화산 국립공원에서는 힘들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하이킹을 즐겼다. 모두 8년을 함께하며 한 번도 하지 못한, 낯설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나 신나고 행복해하는 아내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았다.

 가장 최근의 만족스러운 여행을 통해 나는 아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내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매일 똑같은 등굣길이 지겨워 새로운 길을 찾아 더 먼 길을 돌아갈 정도로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에게, 나와 함께했던 여행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물론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이겠지만 내가 우리의 지난 여행만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지는 이유는, 항상 내가 잘해준 것보다 나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 잘해주지 못해 아쉬운 일이 먼저 떠오르고 말기 때문이다. 귀국 후, 바로 출근을 하게 되더라도 하루 이틀 조금 더 길게 여행을 가볼걸. 조금 더 비싸더라도 마음에 쏙 드는 숙소를 잡을 걸. 사람들의 인스타에 올라오는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새로운 경험을 해볼 걸. 그러기 위해 조금 더 부지런할 걸. 나는 최근에서야 이런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이야 말로 좋아하는 마음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다음 여행은 이탈리아가 어떨까 한다. 땡볕에 한참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평소 꺼리던 곳이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어쨌든 여행은 즐거운 것이니까.


* 코로나 이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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