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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May 03. 2020

결혼기념일엔 그 때 생각이 난다.

결혼 4년차의 결혼기념일

어떤 추억은 돌이켜봤을 때 견딜수 없이 부끄럽지만 그래서 더 웃음이 난다. 그때의 미숙함과 찌질함이 창피하기 보단 귀여워, 아무리 되돌려봐도 스스로가 미워지지 않는다. 당연히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하나 있다. 꽤나 최근의 일이다.

2017년, 결혼식 날이었다. 오늘을 기념할 목적으로 DVD 촬영을 신청했었는데 촬영기사님이 신부에게 한마디 하라며 갑작스레 나에게도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신랑에게도 이런 인터뷰를 시키나.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전혀 생각치 않았던 터라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급히 몇 문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누가 무언가를 물어보면 일단 아무말이나 뱉어내는게 자랑할만한 능력이다. 그러면 얼추 듣기에 이상하지 않은,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할 이야기쯤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무어라도 즉시 대답하는 것이 침묵보다는 항상 나았다.

그때의 습관이 몸에 베었던 탓일까. 나는 마치 휴가를 나온 군인이 자길 부르는 목소리에 본인도 모르게 관등성명을 내뱉듯 말을 이어나갔다.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카메라, 뭔가 대단한 대답이라도 나올 것처럼 기대하고 있는 촬영기사님을 바라보면서, 나는 평소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가만가만 조심히 꺼내었다.

유현아. 결혼 축하해 (중략) 우리가 함께라면 평범한 일상도 분명 매일매일이 여행같을거야.

분명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잘살자, 내가 행복하게 해줄께,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널 만난건 최고의 행운이야, 우리 평생 행복하자, 사랑해. 그 많은 달콤하고 낭만적인 말 중 제일 처음으로 꺼낸 말이 고작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이라니.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촬영 기사님은 아직 이상한 점을 알아채지 못한 눈치다. 나는 새신랑이고, 이 말을 전해 듣는 사람은 이제 막 아내가된 된 새신부다. 아내가 식의 주인공이긴 해도 나 역시 축하받아야할 사람이다. 나는 어쩌자고 하객이나 건낼법한 저런 어색한 말로 영상 편지를 시작했을까. 게다가 그 말은 앞으로 영영 영상으로 박제되어 지우지도 못할 것이다. 어찌어찌하다 미래의 내 자식들에게까지 전해진다면 볼때마다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벌써부터 아빠는 왜 저렇게 얘기했어? 축하는 남한테 좋은 일이 있을때 건네는 말 아니야? 라고 순진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아이에게 변명할 거리를 찾았다. 대답을 찾기도 전에 얼굴이 빨갛게 후끈 달아올랐다 

4월 22일, 오늘은 결혼 기념일이다. 다시 꺼내본 결혼식 영상을 보며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둘이 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나는 화면 속 내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조금 이상할지는 몰라도, 나는 여전히 누구보다 아내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우리의 결혼을 기념하고, 또 축하하고 싶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택한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그 선택은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인터뷰 중 내가 꺼낸 또다른 말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는 평범하긴 해도 여행이라도 온 것 마냥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그것이야 말로 정녕 축하할일 아니겠냐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많은 날이 지나도 한결같이 변치않는 축하의 말을 건내고 싶다. 조금 바보같이 보이는 것쯤 아무래도 상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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