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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May 22. 2020

아내가 굶었다.

임신중 먹지 못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일

아내는 오늘도 굶었다. 다이어트 때문은 아니었다.  아내는 평생을 다이어트라고는 해본 적 없는, 뭐든지 잘 먹고 건강한 게 우선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침쯤 안 먹어도 상관없는 나와 달리 아침에 일어나면 허기를 느껴 먹을 것부터 찾는다. 그런 아내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틀, 아니 삼 일 전이었던가. 그럴 리 없을 텐데도 나는 그 시간이 아주 오래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내는 요즈음 부쩍 아프다. 지난밤에도 깊이 잠들지 못해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한 듯했다. 아침에는 겨우겨우 일어나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잠들기 전 가지런히 떠 놓은 물 한 컵을 마셨다. 아침 식사 대신이었다. 최근에는 그 물 한잔마저 버거운지 평소 마시지도 않던 포카리스웨트를, 그것도 1.5리터짜리 큰 병으로 하나 사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퇴근길 곧장 집으로 오는 대신 편의점에 들러 포카리스웨트 한 병을 샀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내는 내가 사다 놓은 포카리스웨트를 마치 생명수라도 되는 양 틈 날 때마다 조심스레 마셨다. 물 보다 한결 목 넘김이 좋다고 했다. 내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그 페트병이 바닥을 보인 건 아마도 사다 놓은 지 3일쯤 지나고 나서였을 것이다. 이온음료가 놓여 있던 그 자리를 이제 1.5리터 크기의 오렌지 주스가, 또 탄산수가 차지하고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아직 한 번도 쓰이지 않았을 검은색 비닐봉지가 놓여있었다. 언제든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그 비닐봉지가 계속해서 쓸모없기를 바랐다. 아주 간절히.

아내가 임신한 지 8주 째다. 이 기간 산모의 몸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가장 뚜렷한 변화의 증상이 입덧이다.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라고 부르는데 구토와 구역 등 소화기 계통의 증세가 나타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구역질이 나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 싶은 생각마저 들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아침에 증상이 심해서 허기져야 할 아침이 와도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게 고작이었다. 대부분의 산모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그 증상의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다고 했다. 아내는 유달리 입덧이 심했다. 그리하여 입덧이 시작된 아내의 머리맡에는 물 한잔이, 포카리스웨트가, 탄산수와 비닐봉지가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이 복작해질수록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만 해도 나는 입덧이 그 실체가 미약한 상징적인 증상인 줄로만 알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장면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를 테면, 어느 여자가 무언가 일을 하던 중 '우욱' 하며 구역질을 하고 잠시 머뭇머뭇거리다 임신임을 직감하는 장면. 여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그 뒤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여자의 배는 계속해서 불러오고 아이가 태어난다. 누워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임산부를 나는 텔레비전에서도 현실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임신을 마치 머리가 자라고, 키가 크고, 또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워 알아채지 못하는 변화로만 여긴 것이다. 시작과 끝만 뚜렷한 변화. 대게 그런 변화는 그 과정이 희미하고 불분명하다. 마치 학창 시절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지나간 줄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 버린다. 갑자기 키가 크게 되면 관절 마디마디 통증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참으면 지나가는 잠깐의 고통일 뿐이다. 나는 입덧 역시 몇 번의 구역질과 잠깐의 식욕부진일 뿐,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게 될 임신 과정의 일부로 여기고 말았다. 임신임을 알려주는 하나의 징표이자 통과의례, 딱 그 정도의 변화로 말이다.

어떤 일들은 그 민낯을 보여 주는 일에 굉장히 불친절하다. 막연히 알고 있을 때는 제대로 된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끔 하다가 실제 닥치고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한 꺼플씩 보여준다. 당하는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그저 남의 얘기로만 알고 책으로만 접하던 일을 현실로 만나고 나서야 나는 임신이 키가 자라고, 배가 나오는 것과 같은 신체 변화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건 입덧이란 이름의 아픔이 동반된 변신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이를 몸으로 키워내고 결국에는 낳기 위해 몸을 그에 맞춰 바꾸어내는 일.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할 리 없다. 속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렁거려 앉아 있는 것조차 버겁다고 했다. 배는 계속 땡기듯 아프다. 체온이 오르고 무기력해지는 탓에 쉽게 피곤해지는 것도 주된 증상이다. 세상이 좋아져 입덧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해도 쉽게 약을 삼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약이란 건 원래도 삼키기 전에 몇 번이나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건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아내는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에 눈이 떠졌을 때 부디 배고프게 안녕하기를 바라며.

직접 겪어보지 않은 아픔은 표현의 영역을 한참이나 벗어난다. 제 아무리 열심히 설명할지라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완벽하게 연결될 수 없는 개별적 존재라, 경험한 것에 대해 나누고자 할 때에는 오로지 언어라는 가느다란 실로써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언어는 불완전하다. 어떤 것이라도 일단 가슴속에서 나와 말로 설명되어야 한다면, 표현의 방법이자 생각의 방법인 언어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아픈 사람과 아픔을 지켜보는 사람, 그 가깝지만 무한한 사이를 메꾸는 것은 무엇이 되어야만 할까. 정확히 이해하고 함께 아파할 수 없다면 아픈 사람의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아내는 오늘 속이 안 좋다고 했고 그것을 위가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대체 위가 단단한 느낌이 무슨 말일까를 한참이나 생각해야 했다. 슬며시 명치 쪽을 문질러도 보았다. 말랑했다. 곧이어 아내는 뱃속에 종이가 들어있는 느낌이라는 말을 덧 붙였는데 그것 역시 생소한 표현이었다. 나는 옆에 있으면 번거로워 신경 쓰이는 여느 남편들처럼, 그 느낌이 과연 종이가 펼쳐져있는 느낌인지 아니면 구겨져 뭉쳐져 있는 느낌인지, 그 크기는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지를 꼬치꼬치 캐묻다가 핀잔만 들었다.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고서라도 나는 지금 아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정확히 이해하고 싶었다.

아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그 변신의 과정을 나는 평생토록 겪어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일들은 그저 상상하는 것뿐 다른 방법이 없다. 최선을 다해 상상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일. 배운 적 없었다는 핑계로 나는 그 사소하지만 당연해야 할 일이 아직도 어렵다. 나는 무심하고, 무심해서 너의 아픔에 이다지도 무력하다. 아내는 침대에 스펀지처럼 눌어붙어 아픔을 견디고 있다. 나는 처음 유치원에 등원한, 할 일이 뭔지도 모르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어린아이처럼 아내를 바라본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질문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책장 한켠에 꽂힌 육아 대백과를 꺼내 들었다. 그 두꺼운 책에는 아빠는 이 시기의 엄마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상하게도 유독 그 부분만 형광펜이라도 칠해져 있는 것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임신 초기의 엄마는 힘이 드니까 꼬옥 안아주라는 말도 눈에 띄었다. 나는 누워 있는 아내를 찾아가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꽈악 안아주었다. 아내가 웃는다. 아, 말은 불완전 하지만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이런 애정 어린 움직임이구나.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고 말하지 않아야 명확해지는 것들도 있구나. 정확히 이해하지 않아도 걱정하는 마음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구나. 이런 자그마한 목소리가, 풀 수 없는 문제의 실마리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간지럽히며 흝어 지나갔다. 결혼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아내가 임신한지는 고작 8주가 지났다. 아이가 나오기까지는 200 하고도 며칠이 더 남았다. 배우고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좋은 남편이 되는 일도 좋은 아빠가 되는 일도 아직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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