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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Jun 21. 2020

사랑의 엇갈림과 오해에 대하여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지겨운 여름에 시작해서 고작 겨울의 입구에서 끝나버린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의 짧은 연애를 보며, 나는 사랑의 엇갈림과 오해에 대해서 생각했다. 저녁 일곱 시 반에 만나 술 한잔 하자 해놓고는 오지 않는 다림을 사진관에 앉아 밤늦도록 기다리는 정원의 엇갈림에 대해서. 지병이 악화된 정원이 갑자기 병원에 실려간지도 모른 채 연락없는 그를 미워하고, 그럼에도 그가 궁금해 정원의 사진관 앞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다림의 오해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엇갈림과 오해를 넘어 끝내 영원히 끝나지 않은 사랑을 한 그들의 만남에 대해서, 나는 영화가 끝나고서도 한참 생각했다. 영화 마지막 정원의 독백처럼,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사진 속의 추억으로도 남지 않을 것이다. 추억이 되지 않은 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현재 진행 중이 되었다.

초단위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랑을 한 나는, 어쩌면 우리를 갈라놓았을지도 모를 작은 오해와 엇갈림 앞에서도 두렵지 않았다. 약속 시간에 늦게 되면 톡 하나 보내면 되고, 문득 생각이 나면 당신이 생각나서 연락한다고 전화를 할 수 있던 덕분이다. 새삼 그 옛날 사랑을 한 내 전 세대의 모든 연인에 존경심이 생긴다. 필히 생길 수밖에 없던 공백의 시간들, 그러니까 만나는 순간이 아니면 연락할 수 없는 그 답답함을 가슴에 품고 그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행여나 생길 수밖에 없던 공백의 시간 사이사이 암초처럼 존재한 오해와 엇갈림들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들은 필히 우리보다 더 정확한 언어와 감정으로 사랑을 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제멋대로 상상한다.

연애 시절, 대공원에서 보자는 약속에 과천에 살던 아내는 서울 대공원으로 향했고 강변에 살던 나는 건대 어린이 대공원으로 향했었다.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줄도 모른채 각자의 지도를 보며 보이지 않는 상대를 찾아 헤매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리프트 매표소를 찾았고, 아내는 있을 리 없는 동물원 앞 공연 무대를 찾았다. 그날의 엇갈림은 한통의 전화 덕분에 한낱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우리가 영화 속 그 시절에 만났더라면 오지 않는 서로를 기다리며 오해하고, 또 그렇게 엇갈렸지 않았을까.

어떤 사랑은 수많은 해프닝에도 결국에 이루어지지만 또 어떤 사랑은 별 것 아닌 한 번의 어긋남으로도 산산조각 깨지고 만다. 물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런 내용을 얘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죽음과 삶, 그 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다. 그러니 오해는 마시길. 2020년에 1998년의 영화를 보고, 나도 분명 살았던 옛날의 풍경을 생경해하며 그때 그 시절의 사랑법에 대해 잠시 상상했던 것뿐이니. 이 영화를 보았거나 볼 당신은 아마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좋은 영화일 테고 그 기준에 따라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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