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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Jun 21. 2020

나는 너를 행복이라 부른다.

아기의 태명을 짓는다는 것

맨 처음 아기의 태명을 짓자고 했을 때, 좋은 남편이라면 나처럼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의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겸손 같은 너스레를 떠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아내가 태명 이야기를 꺼냈던 그 순간, 나는 침대 위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퀸 사이즈 침대 위 오른편 내 자리에 아내와 나란히 누워 몸과 마음을 바닥까지 널브러뜨린 채였다. 아직 부르지도 않은 아내의 배 위에 내 손을 포개어 놓고서 '배 많이 나왔네'라고 말하는 것이 매일 밤 내가 즐기는 장난이었다. 그날 밤도 나는 손을 동그랗게 모아 배꼽 언저리에 두는 비슷한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태담도 무엇도 아닌 시답잖은 말을 걸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실없이 웃었다. 임신한 지 약 6~7주 정도 되었을 때였다.

"오빠 우리 태명 뭐라고 지을까?"

그 질문은 수업이 끝나고 짐을 챙기고 있던 학생에게 떨어진 별안간의 과제처럼 무념무상의 내게 던져졌다. 뇌까지 이완되어있던 나는 그전까지 태명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생각이 없으니 당황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을 우리가 하던 행복한 장난의 연장으로, 마치 내일 아침 뭐 먹을까 라는 대화처럼 가볍게 받았다. 말하자면,  툭하고 떨어진 질문을 틱 하고 가볍게 퉁겨 내었다.
"맞아. 태명 지어야지. 뭐라고 부를까?"
나는 대체로 의견이 없는 편이라 질문을 받으면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되묻는다. 고쳐야지 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좋지 않은 버릇이다. 중요하다면 중요했던 그 순간 나쁜 습관은 어김없이 또 등장했다.
"행복이 어때?" 아내가 대답했다.
행복이는 튼튼이, 건강이와 함께 우리가 농담 삼아 자주 얘기하던 태명 중 하나였다.
"좋은데?"
별생각 없는 내 대답을 마지막으로 짧은 대화가 금세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아까의 장난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스르르 눈이 감겨 잠이 드는 것처럼 아기의 태명이 정해졌다. 우리는 아기를 세상으로 내어 놓기 전까지 행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행복이가 행복이가 된 이후, 나는 태명에도 유행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좀 더 세련된 태명은 물론이고 부르기에 쉽고 귀여운 태명 역시 있단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덜컥 옷을 사버린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기 위해 집에 와 인터넷을 뒤지는 것처럼, 나 역시 우리의 선택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단연 가장 인기를 끄는 유형의 태명은 잼잼이, 죠죠, 아아와 같이 동음을 반복하여 귀여움을 배가 시킨 세련된 이름이었다. 반복적인 리듬감에 된소리까지 들어가면 뱃속 아기의 청각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런 태명을 가진 아기의 엄마들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또 사랑스럽게 아기의 태명을 소개했다. 내 취향은 아니었으나 두부, 배추 같이 음식 이름을 붙인 태명도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것도 아니면 부부만의 의미를 담아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꿀복이, 꽃꿀이, 동산이와 같이 설명을 듣기 전에는 도대체 뜻을 알 수 없는 이름들이 그랬다. 그중 행복이라는 태명이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은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행복이. 아무래도 너무 쉽게 지은 이름이다. 쉽게 지은 이름은 쉽게 불려야 하건만 나는 쉽게 지은 이름을 부르고 또 소개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웠다. 태명을 짓고 처음 몇 주간, 행복이란 이름은 내게 자신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러워 '태명이 뭐야'라는 질문에 떳떳이 대답하지 못했다. 태명을 소개할 때면 괜히 붙이지 않아도 될 설명을 덧 붙였다. 태명은 직관적이고 단순한 것이 좋다는 둥, 원래는 행복이가 아니라 귀엽게 햄벅인데 편의상 행복이라 부른다는 둥 구구절절한 변명이 볕 아래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따라 나왔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테고 (이 경우엔 이름이 아니라 별명에 가깝지만), 이름이 평범하다고 존재마저 평범할 이유는 없었지만 태명마저 자랑거리가 되는 SNS에서 나는 자꾸 초라해져 지난밤 내 성의 없음을 아주 가끔 후회했다.

사실 태명은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꾸 부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당연하지만 쉬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아내의 배가 누가 봐도 임산부처럼 불러왔을 때였다. 그 전까진 눈으로도, 손으로도 느낄 수 없던 아기다. 지금의 내가 가진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오직 초음파만으로 느낄 수 있는 아기가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니,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소통해야 한다니. 나는 그것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태담을 할 때면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연기해야 할 정도였다.
행복아 들리니.
몇 마디 내뱉지도 못한 채 나는 연극 무대 위에 혼자 서 있는 아마추어 배우가 되어 버린다. 손짓과 발짓은 물론이고 숨결마저 부자연스러운 무명의 배우가 밤마다 한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독백 연기를 한다. 내 어색한 말투를 듣고 아내가 웃는다. 나는 민망해도 태담을 멈출 수 없다. 그럴 땐, 괜히 조금 더 장난기를 섞어 태명을 불렀다. 대화가 어색해지면 대신 동화책을 읽었다. 그곳엔 적어도 대사는 나와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느리지만 정확한 발걸음으로 조금씩 행복이란 태명에 익숙해져 갔다.  

20주를 넘어 아내의 배가 점점 커지자 행복이의 존재는 시각적으로 더욱 분명해졌다. 아직 한참이나 조그만 주제에 손을 대면 제법 아기처럼 뻥뻥 시원하게 발을 차기도 했다. 불러야 이름이고 불려야 이름이라 했던가. 나는 이제 자신 있고 능숙하게 행복이를 부른다. 출근 전 문을 나서기 전에 한번 부르고, 저녁에 침대 위에 누워 여러 번 더 부른다. 부르는 목소리엔 힘이 실려있다. 행복아 오늘은 무얼 먹었니. 엄마한테 맛있는 거 먹자고 해, 사다 줄게. 나는 점심에 햄버거를 먹었는데 언제 한번 같이 먹자. 너도 좋아할 거야. 엄마 힘드니까 너무 밤에 화장실 가겠다고 깨우지마와 같은 말을 건넸다. 그건 더 이상 혼자서 하는 연기가 아니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꿀렁하는 발차기를 대답 대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던 행복이란 이름이 괜히 뭉클해진 것도 딱 이즈음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유명한 그의 시 '꽃'에서 존재는 이름이 불리고 난 뒤에야 의미가 된다고 노래한 적 있다. 아기는 오랜 밤 계획하고 기다렸던 우리를 행운처럼 찾아왔고 이름 하나 없이 그 존재만으로 이미 무한의 의미였다. 그리고 여러 번 이름이 불린 뒤 마침내 정확한 하나의 의미를 더 갖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왜 우리가 행복이를 행복이라 부르기로 했는지 깨달았다. 그날의 우리는 성의 없이 섣부른 결정을 한 것이 아니었다. 더우면 땀이 나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워 눈치채지 못했을 뿐, 지난날 정해진 평범한 태명엔 아기를 향한 우리의 바람 같은 것이 녹아 있었던 것이라고, 이제와 나는 그렇게 믿는다.

태명에 부모의 바람이 담긴다면, 태명을 부르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성당에 다니는 엄마는 50일이 넘는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그 기도엔 특별한 힘이 있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마음만은 진심으로 받았다. 매주 꾸준히 교회에 다니시는 장인 장모님도 행복이를 위해 기도를 시작하셨다. 기도의 제목과 방법은 몰라도 그 내용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과 교회를 다니시는 부모님을 두고도 종교 생활을 하지 않는 우리는 기도 대신 매일 태명을 불렀다. 행복아 행복아. 그러면 태명을 부르는 우리도, 불리는 행복이도 모두 행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이 말을 하기 위해 긴 글을 썼다. 나는 우리 아기가 뱃속에서도, 세상에서도 멈추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이를 향한 내 첫 번째 바람이다. 그저 행복하게 사는 것 마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도무지 세상은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 나는 줄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만을 바랐다. 가끔 감당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행복을. 아 그때 그거 참 힘들었는데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그런 작지만 행복한 순간을 모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어쩌면 태명을 짓는 그 순간 나는 행복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 했고 남은 인생은 선물 같은 것이니 그저 즐기고 행복하면 된다고. 그런 간절한 바람을 담아 나는 오늘도 너를 행복이라 부른다. 아빠로서의 첫 바람을 목소리에 차곡차곡 꾹꾹 눌러 담으며 너를 꿈처럼 기다린다. 눈을 감으면 행복이는 벌써 세상에 나와 웃으며 나와 아내를 바라본다. 눈 앞에서 안절부절 애를 쓰는 엄마 아빠의 의미 없는 작은 몸짓과 표정으로도 행복해한다. 그때의 너는 아마 새로운 이름이 있겠지만 부디 너의 태명을 기억해 주길. 그리고 그때의 우리 마음도 어렴풋이 알아주길.

임신 29주, 배가 많이 부른 아내를 안았다. 우리 사이에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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