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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Jul 13. 2020

장마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울적해졌고 나는 이미 밀린 빨래를 한번 더 미루었다. '오빠 우산 챙겨'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난 뒤에야 가방에 우산을 챙겨 넣었다. 들은 것 없이 가벼웠던 가방 무게가 조금 무거워졌다. 나는 그것이 출근길 내 어깨 위에 애정의 무게라도 얹혀진 것 마냥 포근하게 느껴졌다.

오후 내 비가 내린다. 나는 내 자리 옆으로 난 커다란 창문 밖 비의 풍경을 잠깐식 바라본다. 핸드폰 글쓰기 앱을 켜고, 눈이 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설렘이라면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기다림이라고 적는다. 하늘하늘 사뿐히 내려와 세상을 가만히 덮는 소복한 눈, 추적추적 내려와 멈추지 않고 흐르거나 웅덩이 같은 곳에 고여 질척한 함정을 만드는 비. 나는 눈이 내리기 전부터 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비가 내리는 순간부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한쪽에겐 서운할 지라도, 눈이 설레는 기다림이라면 비는 견뎌야 하는 기다림이라고 한 줄 더 적는다. 견뎌야 하는 기다림은 어김없이 처량하고 애처롭다고, 사랑보단 이별의 정서에 가깝다고 쓴다. 나는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약속한 연인에 대해서는 들었어도 첫 비 내리는 날 약속한 사랑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비 오는 날 헤어졌다는 어떤 연인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눈물이 그렇듯 녹아 흘러내리는 액체란 애초부터 그런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물이란 알 수 없는 이유로 슬프다. 그럼에도 한 번도 그치지 않은 비는 없었어라는 말을,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줄곧 좋아했다.

오늘, 장마가 시작되었다. 차가운 오호츠크해 한랭 전선과 따뜻한 북대평양 온난 전선이 만나 서로 대립하며 장마 전선을 형성한다. 전선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며 비를 뿌린다. 내 일터의 한 부분은 한랭전선처럼 서늘하게 차갑고, 또 다른 일상은 온난전선처럼 따뜻하여 보드랍다. 회사와 일상이 교차되어 만나는 삶의 순간순간,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오랜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떠오르는 대로 조금씩 적기로 한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그 이야기들을. 장마가 끝나면 새로운 이야기들이 다시 또 가슴 위로 떠오르거나 바닥 깊은 곳에 물처럼 고여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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