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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Jul 08. 2020

일희일비

직장인의 미덕

다시, 알았다.

역시 '일희일비'야 말로 직장인의 미덕이다. 진정 직장인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로또라도 당첨된 양 기뻐할 줄 알아야 하며,  또 티끌 같은 일로도 세상에 버림받은 것 마냥 슬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짧은 한 마디에 하루를 망치고, 새벽에 깨는 밤을 수집하듯 모으고, 그러다 득도한 듯한 깨달음으로 환희에 차는 것. 그건 직장인이 아니고서야 불가한 일이다.

오늘만 해도 나는 감정의 고원과 계곡 사이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왔다 갔다 널뛰었다. 내 일도 아닌 남의 일을 보며 답답해하고 무슨 일을 저렇게 머리 없는 사람처럼 한심하게 하는 건지, 그가 느끼지 않는 감정을 대신 느끼며 분노했다. 그러다 칭찬 한마디를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봐야 나보다 오래 일한 나이 든 사람의 한마디였을 뿐일 텐데 고작 '수고했다. 아까는 정말 잘 해냈다.'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영락없이 일 하는 사람이고 내 감정의 주인도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내 마음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 흔들리는 나는 직장인, 그러니까 회사원이다.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애초에 그리 큰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그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가령,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던가, 아이를 낳는다던가, 갑자기 늘어난 매미나방의 수와 습하게 더워진 날씨, 심지어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잠을 자는 일 모두 그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단지 하루를 버티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일'의 화장기 없는 민낯일진대, 이른 아침 미어터지는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는 이유는 일에 대한 사명감 따위가 아닌 그저 우리가 그런 계약을 했기 때문일 텐데, 일하며 수시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내 모습이 나는 아직도 슬프도록 낯설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지 않은 채 두 발 단단히 설 수 있는 방법쯤은 나도 잘 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둘 중 하나이다. 바다와 같이 넓어지거나 갯벌처럼 점점 굳어가거나. 그 외의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바다가 되기보단 갯벌이 되어 가는 중이다. 바다가 넓은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일부로 안고 품어 낸다면 갯벌은 그저 흔적을 간직하며 깊게 패여간다. 둘 다 작은 상처에 흔들리고 요동치지 않지만 나는 바다처럼 넓거나 깊지 않고, 그저 갯벌과 같이, 유연한 액체도 딱딱한 고체도 아닌 상태로 점점 굳어갈 뿐이다. 온몸 구석구석엔 일희일비의 상처가 전쟁터 군인의 상흔처럼 새겨져 있다. 그러다 밀물처럼 무언가 나를 감싸면 나는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마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지긋지긋한 일의 굴레와 숙명을 피해가지는 못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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