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재이, 유현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산책길.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느끼며 찬찬히 걸었다. 바람에도 그림자가 있다면, 바람이 우릴 타고 지나간 자리에 남게 되는 우리와 똑 닮은 모양의 흔적이 아닐까 상상하면서.
구름과 강물을 제외한 주변의 많은 것들 중 우리는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것 들이었다. 가장 무거운 밀도의 시간을 공유하는.
그 느리고 무거운 시간 속에서 나는 한껏 민감해지고 말아, 마치 커피 한 잔에서 베리와 고구마, 레몬과 캐러멜의 노트를 읽어내는 바리스타처럼 내 주변 모든 것들에서 그들만의 정취를 감각했다.
엄마는 ‘저 나무 정말 예쁘지’라고 말하는 대신 ‘저 조팝나무 정말 예쁘지’라 말했다.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쌀 튀밥 같은 것들이 잔뜩 묻은 하얀 나무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었다.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던데, 나는 바로 그 순간 내가 영원히 저 나무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나무 이름 옆에는 오늘 우리 가족이 함께 나란히 발을 맞춰 걸었고 그것 참 좋았더라는 짧은 소감이 함께 자랑처럼 적혀 자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