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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Jul 21. 2024

제주 여행

완벽한 여행의 조건

하필 여행 기간의 제주는 장마였다. 눈 뜨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여행이 3주나 남은 탓에 볼 때마다 예보는 달라졌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는 소식만을 골라 믿었다. 숙소 4개를 예약했다가 3개를 취소했고, 일정을 두 번 바꾸었다.

간절한 여행이었다. 날씨의 도움을 받고서라도 어떻게든 행복해지고 싶은.


결혼 후 나에게 변한 점이 하나 있다면 너희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조금 무리했던 숙소는 실제로 보니 더 멋진 곳이었다.


흉내 내지 않은, 섬세한 취향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아무래도 티가 난다. 문을 열자마자 기분 좋은 향과 음악이 반겼다. 커튼을 거두면 이국의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한 수영장이 보였고. 조용히 숨을 죽이면 티비 시보광고에서나 듣던 새소리가 들렸다.

여기 너무 좋다. 유현이가 말하자 소파 위 재이도 발을 굴렀다.

왜 어떤 풍경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리워지는 걸까.


여행이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면, 완벽한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얼마나 완벽히 단절될 수 있는가, 도망쳐 나온 일상이 얼마나 고되었는가에 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여행엔 딱 절반만큼의 한계가 있다.

어떤 순간엔 그저 장소만 바뀐 채 일상의 고단함을 반복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일상의 슬픔이 없었다면 여행의 기쁨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고 온 것은 겨우 커피 한잔, 고작 고등어 한 접시 따위가 아니었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대단한 행복, 이렇게 이번 여행을 부르고자 한다면 누군가는 너무 과한 표현 아니냐 핀잔을 주겠지만 행복이란 원래가 주관적이다.


그 뒤로 벌써 한 달이 흘렀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며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지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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