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분한 우정

신용산역에서

by 데미안

다시 모이는데 반년이 걸렸다.

‘뭐 하냐’ 한마디면 쉬이 만날 수 있던 만만이들이었는데, 일정 투표라도 하지 않으면 얼굴 보기 힘들다. 슬퍼할 일까진 아니라도 나는 그것이 종종 서운하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어떻게든 만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니 좋게 생각하려는 편이다. 사실 내겐 공수표만 날리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약속이 많다. 밀린 빨래처럼 묵혀둔 인연들을 생각하면 미안해진다. 역시, 중요한 건 어떻게든 만나려는 의지다. 그 마음 한번 먹기가 내겐 어렵지만 이 녀석들과의 만남만큼은 언제나 최우선으로 여기려 한다.


고민 끝에 낙점된 장소는 용산역, 이십 년 넘는 인연 속 약속 장소로는 처음 등장한 동네였다. 지리 박사 승준이 말하길 거기가 우리 사는 곳— 왕십리, 공덕, 이수, 과천, 수색 —- 의 대충 중간쯤 된다고. 과천에서 4호선 직통이기도 했고, 마침 용산 아이파크 몰 안에는 무한 리필 샤브샤브집도 있었다. 일단 만나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예전만큼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왜 하필 무한 리필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담낭이 없어서, 나이 먹고 위가 줄어서,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우리만의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가벼운 주머니에 식욕은 터질 듯 빵빵해, 그저 ‘무한’이라면 좋다고 덤벼들던 시절이 있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떡볶이, 스테이크. 메뉴 가리지 않고 무림 고수 도장 깨기 하듯 여러 가게를 찾아 헤매었다. 마치 과식과 여유로움 만이 청춘의 유일한 특권인 양 음식도 시간도 우정도, 전부 한도 없는 무한으로 한껏 낭비했다.

맛은 몰라도 인심만큼은 넉넉했던 무한 리필집도 이제 경기를 타는지, 여기저기 야박스러움 투성이다. 제한 시간 90분에 그릇은 손바닥만 해지고, 물 한잔 마시려면 멀리 정수기까지 왔다 갔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특유의 왁자지껄 요란스러움이 좋았다.

야채 더 먹지 말고 고기를 더 먹어. 여긴 샤브샤브가 아니라 닭강정 맛집이네. 오 팥빙수가 우유 얼음인데. 아니야 그거 연유 뿌린 거야. 야 내 건 연유 안 넣었냐 이거 완전 생얼음이야.

인정해야겠다. 나는 급식 먹는 청소년들처럼 잔뜩 신이 났다.


다음 발길이 오락실로 향했다. 한 판에 오백 원 하던 게임비가 이천 원이 되었고, 동전 대신 카드로 계산해야 하는 낯선 오락실에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아직 내게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에선 짐짓 다 아는 척,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가인척 연기하고 있지만 나는 원래가 유치한 사람이다. 고3 시절, 일렬로 줄줄이 앉은 승준, 희윤과 나는 바보 라인으로 불렸다. 누가 붙여 준 별명인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참 바보 같지 않냐 하며 스스로 지은 이름일지도 모른다. 야자 시간에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며 낄낄대고 서로가 서로를 우스워하던 멋없는 사내놈들에게 이만한 별명도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다시 딱 그때 그 바보 라인의 핵심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나이퍼 게임의 총구를 겨누다 목에 담이 들고, 되도 않는 힘자랑을 하며 엎치락뒤치락 펀치 대결도 했다. 말 타기 게임을 하면서는 속도를 내기 위해 말고삐를 세게 흔들다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금세 숨이 차 헉헉댄 것만 빼고는 영락없는 열아홉 고등학생이었다.

짜식, 너 어디 안 가고 아직 살아 있었구나. 오랜만에 만난 어린 날의 내가 맘껏 반가웠다.


이날은 유독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골목골목 헤매다 방문한 허름한 치킨집에서 나는 아까의 반가움과는 다른 감정을 대면했다. 소주 한잔에 치킨 한 마리를 오래 먹으며 나 스스로는 물론이고 우리 사이가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가장 말이 많던 내가 말이 줄고 어느샌가 듣는 사람이 되어 버린 사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성향쯤이야 세월이 지나며 얼마든지 바뀌곤 한다. 다섯 중 가장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건 나 혼자니, 이야기할 만한 삶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가 더 이상 삶의 같은 부분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이십 년 세월이 무색하게도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또 일하는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APAC에서 홀로 승진을 했단 소식도, 회사에서 인정받아 프로젝트 끝나고 몇 주의 휴가쯤은 문제없단 얘기도 영 새삼스러웠다. 자신의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는 그들이 자랑스러운 동시에 훌쩍 어른이 된 친구들을 마주하는 것이 낯설었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과거 얘기나 바보 같은 농담을 하지 않는 우리에게 조금 실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좋은 일이다. 우리의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있단 증거이기 때문이다. 고여있는 물이 그렇듯 흐르지 않는 시간은 언제고 썩고 만다. 만날 때마다 과거 속에서 헤매는 모임은 생명력을 잃고 시들해진다. 함께 뒤적일 추억이 바닥나는 순간 만날 이유도 사라진다.


행여 막차를 놓칠까 가장 먼저 자리를 뜬 나는 십분 거리의 신용산 역의 인적 드문 밤거리를 힘껏 달리며 다시 한번 상념에 젖었다. 만나서 좋았다. 과천에 한번 갈게. 친구들의 인사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아마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자주 챙기며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이 친구라면 내겐 친구라 부를 사람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다 한숨 돌리며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몸이 멀어져도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 것이 대단한 기적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당연스레 여길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재이의 안부를 묻기 조심스러워 이기종에게 대신 묻는 배려, 자주 보지 못해도 표정에서 드러나는 반가움. 시간도 애정도 담뿍 쏟지 못하는 내게 과분한 우정이다.

나는 그걸로 되었다. 새벽까지 감자탕 집에서 나의 내밀한 얘기를 밤새 털어놓지 않아도, 함께 콘서트에 놀러 가지 않아도, 어른이 된 친구들의 모습을 가끔 만나 확인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날이 풀리고 봄이 오면 십 대 때 만난 우리가 마흔이 된다. 그들을 모르던 기간보다 알고 지낸 시절이 더 길단 의미다. 다음 모임 땐 가족들까지 함께 만나면 어떨까 제안하려 한다. 무한 리필 집은 아무래도 가기 힘들겠지만 새로운 전통은 언제고 새로 만들어진다.

다음 번엔 반갑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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