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가 인생을 잠그는 법
컬투쇼에 사연을 보내면, 아마
“이분, 생활이 원래 이렇게 다이나믹 한 분입니다”라는 멘트가 붙을 것이다.
나는 원래도 하루에 한 건씩은 사건을 생산하는 인간이지만,
이번 일은 생활형 레전드였다.
웃자고 꺼냈다가 듣는 사람이 먼저 숨 고르는 그런 급의 이야기.
한국에 잠시 들어와 해운대 지인 집에 머물게 되었던 때의 일이다.
여름이라 덥다며 지인은 집을 선 듯 내어주며 이야기했다.
“그냥 마음대로 벗고 다녀요. 전 친정집에 가 있을게요.”
그 말은 감사했지만, 동시에 인생을 얇게 입고 다니게 하는 위험한 허락이었다.
도착한 날, 나는 곧장 배달의 민족 문명에 접속했다.
미국에서는 라면 하나 사려면 차 타고 20~30분은 우습게 달린다.
여기선 앱 한 번 누르면 밥이 날아온다.
게다가 팁도 없다. 이건 먹으라는 계시다.
그날 저녁 배달 성공.
다음 날 아침은, 커피와 갓 구운 빵 주문.
이렇게 신날수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이 얼마나 편리한 곳에서 사는지 절. 대. 모른다.

“도착했습니다.”
문자를 받고 대문을 열었다.
배달원은 엘리베이터 앞에다 두고 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커피와 빵을 집었다.
그 순간—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현실이 로딩됐다.
안 열린다.
헉.

나는 속옷도 애매한 잠옷 차림이었다.
아주 얇고, 아주 크고, 아주 무책임한
티셔츠 한 장.
맨발.
대문 비밀번호?
모른다.
전화기?
집 안.
커피와 빵을 들고,
나는 잠시 사회에서
로그아웃 당했다.
앞집 벨을 눌렀다.
—무응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중년 신사가 서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었다.
왜 숨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아…
이건 절대 안 된다.’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 층 내려가 교회 문패가 붙은 집을 눌렀다.
왠지 구원받을 것 같았다.
없다.
앞집도 없다.
그렇게 16층에서 시작된 하의 실종 순례는
5층까지 이어졌다.
아무도 없다.
이 아파트는 낮에는
사람이 증발하는 구조가 분명하다.
마침내 1층.
대문을 열어놓고 청소 중인 집 발견.
사람의 흔적이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 있나.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던 내가,
열린 문을 보고 거의 울 뻔했다.
“실례합니다—”
청소기 소리가 멈췄다.
아주머니 등장.
내 몰골을 보시고 뒷걸음질.
“아니… 무슨 일이세요?”
그 눈빛,
‘이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생명체인가.’
“설명이 좀 복잡한데요…”
아주머니는 한 발 더 뒤로.
"저... 지인집에 놀러 왔다 대문이 잠기는 바람에..."
“그래서요?”
아, 이건 엮이기 싫다는 강한 끊어냄.
“집에 사람은 없고, 비번은 아직 못 외웠고요,
전화기는 안에 있고요…"
눈빛은 계속 나를 수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죄송하지만... 관리사무실에 연락 좀…”
“관리사무실은 바로 입구에 있는데…”
“제가… 이 차림으로는…”
아주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한 번 더 스캔하시더니 들어가셨다.
잠시 후,
“관리실 아저씨 곧 오신대요.”
열어둔 문이 닫혔다.
1층은 사람 왕래가 잦았다.
시선이 꽂혔다.
나는 2층 계단 창 앞으로 피신.
그때 택배 아저씨 등장.
나는 3층으로 도망.
아저씨는 2층에 물건 놓고 날 따라
3층으로 올라온다.
나는 4층으로 도망.
그리고 4층에서—
문이 열렸다.
사람이 나온다.
커피와 빵을 든,
맨발의 하의 실종 여자가 서 있고
그 앞에 전혀 예상 못 한 이웃이 서 있다.
서로의 묘한 눈빛 교환.
'저 인간 뭐야?', '
어라~ 사람이 있었어?'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나는 5층으로 도망쳤다.
‘그럼 내가 벨 눌렀을 땐…
일부러 안 연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관리실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결국 다시 1층 벨.
“저기요… 16층에 놀러 왔다가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사람인데요…”
말하면서도 참 인생이 짠했다.
문이 열렸다.
(우리 집 대문도 제발 좀 이렇게 열려라…)
“혹시 슬리퍼랑 겉옷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여긴 아버지 집이라… 아버지 옷밖에 없어요.”
“그래도 그게 지금 제 모습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결국 나는
할아버지 잠바 + 추리닝 + 슬리퍼를
빌려 신고 사회 복귀에 성공.

경비실에서 다시 긴 설명회.
지인에게 전화.
안 받는다.
문자와 메시지 남김.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씹는다.
마지막으로 지인 할머님께 전화.
드디어 연결.
비번은 아시는데, 매번 눌러서 외우진 못하신단다.

결국 직접 오셔서
눌러주고 가셨다.
그날 나는
세 시간을 밖에서 떨었다.
커피는 식었고,
빵은 눅눅해졌고,
내 자존심은 한층 더
얇아졌다.
그 이후로
대문이 잠길 때 나는
그 “띠로링—” 소리만 들리면
본능적으로 옷깃을 여미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쓰다듬는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나를 한 번
완벽하게 사회로 방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