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속에 남은 사람들

지는 팀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

by Dami

추워도 너무 춥다.

영하 28도라는데, 체감은 영하 35도까지 내려간다 했다.

숫자는 숫자일 뿐이고, 몸은 숫자를 모른다.

칼바람에 얼굴을 스칠 때마다

'스친다'는 말이 이렇게나 순한 표현이었나 싶다.

바람은 스치는 게 아니라 베어 간다.

피부 위를 얇게,

그러나 분명하게 긁고 지나간다.


지구 온난화로 점점 더 뜨거워진다더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내 생전 이렇게 추운 날은 처음이다.


2주 전 슈퍼볼 경기가 있던 날부터 춥기 시작했다.,

그날도 영하 24도, 채감온도 영하 28도였지만

시카고는 추위와 상관없이 더 부산스러웠다.

이 도시는 나의 고향 부산과 닮은 데가 있다.

오랫동안 승리의 단맛을 잊은 팀을 품고 있으면서도,

유난히 뜨거운 팬들이 떠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시카고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롯데 자이언츠'가 겹쳐진다.

지는 데 익숙해졌다는 자조와,

그럼에도 돌아서면 다시금 희망을 슬며시 꺼내드는

불멸의 '부산 갈매기' 말이다.


시카고에는 전설이 있었다.

마이클 조던

Photo by Walter Iooss Jr. / Sports Illustrated


그가 날아다니던 시절에 시카고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로서는

이 도시의 팬이 되지 않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던은 떠났지만 '시카고 불스'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도시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



유명한 야구팀이 두 개 - 컵스와 화이트 삭스

풋 볼 - 베어스

그리고 겨울이면 유난히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아이스하키 - 블랙 호크스가 있다


지난 일요일, '솔저 필드'에서 결전이 치러졌다

출처: Chicago Bears 공식 홈페이지 (또는 해당 사진을 가져온 매체명)

이미지 저작권: © Chicago Bears. All rights reserved.



상대는 LA 램스 - 따뜻한 남쪽나라 출신들.

혹한이라 시카고가 유리할 거라고 팬들은 들떠 있었다.

관중은 6만여 명,

출처: Charles Cherney/Chicago Tribune/Tribune News Service via Getty Images



기온은 영하 17도,

시카고 칼바람은 시속 35킬로미터로 불고

덕분에 체감온도는 영하 25도까지 떨어진 일요일

열혈 팬들은 낮 1시부터 자리를 잡기 위해 줄을 서서,

연장전까지 치른 밤 9시까지 거의 열 시간 가까이를 눈보라 속에서 서 있었다.


누군가는 발끝 감각을 잃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출처: Chicago Bears 공식 홈페이지 (또는 해당 사진을 가져온 매체명)


무엇이 이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한 자리에 묶어 두는 걸까?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 있다.

매년 롯데 자이언츠 경기 다시는 안 본다고 외치고,

봄이 오면 제일 먼저 "가자~ 롯데!!"를 외치며 시간표를 암기한다.


덕분에 운동 경기엔 별 관심도 없는 나까지

자연스레 "롯데 어때?" 하며 스포츠 뉴스를 뒤진다.


한 번은, 대학에서 강단에 서는 조카가

서울로 원정 경기 온 롯데를 놓칠세라 응원하러 갔다가,

행사 복장을 벗을 틈도 없이 뾰족구두에 드레스까지 입고

잠실 야구장 계단을 오르내리다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졌다.


구두는 바닥 끼고,

드레스는 찢어지고,

결국 응급실로 실려가서

부러진 다리로 목발을 집고 나왔다.

(그리고 그날도 자이언츠는 졌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쌓일수록

팀을 더 놓지 못하게 된다.


시카고의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승리를 확신했지만,

졌고-

베어스가 탈락했음에도,

신인 쿼터백의 성장을 이야기하며

내년에 기약한다.


며칠 뒤 열릴 '슈퍼볼'은 더 따뜻한 곳에서 열릴 것이다.

광고 한 편 값이 집 한 채 값과 맞먹고,

하프타임에는 '배드 버니'가 무대를 달굴 거라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다.


돈과 열기와 스포트라이트는 그곳으로 옮겨가겠지만,

주위 속에서 오랫동안 버티며 팀을 응원한 사람들의 마음은 여기에 남는다.


팬이란 결국,

이기기 위해 모이는 사람이 아니라,

져도 떠나지 않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고,


칼바람에 베인 얼굴로도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사람들이다.


조던은 떠났고,

베어스도 올 경기에 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깃발을 꺼내 집 대문 앞에 걸어 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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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어,

이 도시와 저 팀들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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